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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

서울 성곽공원(흥인지문~낙산공원)

매루 2013. 3. 5. 12:53

 

  

 

 

서울성곽은 내사산 북악산 (342미터), 낙산 (125미터),남산(162미터) ,인왕산 (338미터)을 잇는
총길이 59.500자 (약 18.7키로미터)의 서울성곽

 

1396년 태종임금은 1.2월의 49일 동안(농한기 : 農閑期) 전국에서 11만 8천명이 동원 되어 성곽공사를 하였고

 8.9월의 49일(가을 農恨期) 동안  79.400명이 동원되어  4대문과 4소문을 준공 하였읍니다

 

세종4년(1422년) 1월 전국에서 인부 32만명과 기술자 2.200명을 동원하여

서울성곽의 전구간을 돌로 쌓는 개축공사를 하였읍니다 (공사중 사망자수 872명)

당시 서울의 인구가 10만명 정도 였던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커다란 공사 였음을 알수 있읍니다 

 

일제강점기에 전차가 들어서면서 흥인지문과 서대문부근 그리고 숭례문 부근의 성곽들이 헐렸고

서대문과 혜화문이 헐리면서  18,7km의 성곽중 10,5km만 남게 됩니다

서울시는 문화재청과 함께  2015년 서울성곽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키 위하여 2006년부터  복원사업을 펼쳐오고 있읍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3,1절 연휴의 마지막날인 3월3일(일요일)

서울성곽공원의 흥인지문~낙산공원을 걸어 보았읍니다

 

흥인지문(興仁之門)

서울 성곽은 옛날 중요한 국가시설이 있는 한성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도성(都城)으로,

흥인지문은 서울의 4대문 중 유일하게 성문의 이름에 유일하게 之자 가  들어 잇는데

예부터 우리나라 동쪽은 땅의 기운이 약해 왜구의 침입이 잦았기 때문에

동쪽의 기운을 높이고자 산맥 모양의 ‘지(之)’자를 이름에 넣었다고 합니다.

지금 있는 문은 고종 6년(1869)에 새로 지은 것이라고 하며  

바깥쪽으로는 성문을 보호하고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반원 모양의 옹성(甕城)이 쌓여져 있는데  

흥인지문은 도성의 8개 성문 중 유일하게 옹성을 갖추고 있읍니다

 

 

 

지금은 철거 되었지만 흥인지문 옆의 이화여대병원 자리는 조선시대 여진의 사신이 머물던 북평관의 자리였읍니다

여진의 사신은 오랑캐라는 이유로 한양도성의 大門인 흥인지문을 사용할수 없었기에 東小門인 혜화문을 사용해야 했었다고 합니다

 

 

 

한양의 4大門
동쪽에 흥인지문(興仁之門, 동대문-종로구 종로6가 69),
남쪽에 숭례문(崇禮門, 남대문-중구 남대문로4가 29),
서쪽에 돈의문(敦義門, 서대문-종로구 신문로2가 강원산업 건너 보도 강북삼성부근 - 현재 멸실됨)
북쪽에 숙정문(肅靖門, 肅淸門, 종로구 삼청동 , 76년 門樓復元)

 

 

 

 

 

 

전봇대와 어지럽게 늘어진 전깃줄들이 고풍스런 성곽과 어울리질 않습니다

 

낙산으로 오르는 중간에서 바라본 남산

 

멀리 관악산도 보입니다

 

 

 

 

 

 

 

 

 

낙산(駱山)은 산의 모습이 낙타의 등처럼 볼록하게 솟았다고 하여 나타산 으로 불리우다가 지금의 낙산이 되었다고 합니다

  서울을 구성하는 내사산(內四山:북악산·남산·인왕산·낙산)의 하나인 낙산(駱山)은 서쪽 인왕산과 동서로 마주한 산으로

풍수지리상 주산인 북악산의 좌청룡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암문(暗門) : 성벽 위에 누각 없이 만들어 놓은 문

사람이나 가축이 드나들거나  전쟁시 양식이나 군수품을 조달하기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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