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타우로프(Frits Thaulow,1847-1906 노르웨이) 본문
프랑스나 이탈리아 화가들이 보기에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유럽의 변방이었습니다.
19세기 후반이 되면 ‘변방의 화가들’이 파리에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만의 문화가 섞이면서 파리나 이탈리아 화가들과는 또 다른 맛을 주는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노르웨이의 프리츠 타우로프(Frits Thaulow, 1847-1906)의 작품을 볼까 합니다.
그런데 이 화가의 이름을 프리츠 테우로브라고 하는 자료도 있는데 어느 것이 정확한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노르웨이 대사관에라도 문의를 해봐야 할 모양입니다.
함부르크 엘방크에서 1886
아무리 사전을 뒤져도 Elbank라는 말을 찾을 수 없습니다.
지명인지 또 다른 명사인지 알 수 없지만 지명으로 보기로 했습니다.
공원 벤치에 눈이 소복이 내렸습니다.
인적 없는 공원에는 적막함이 가득하고 모든 것을 덮은 눈 위로 언뜻 바람 한 줄기가 느껴집니다.
문득 두툼하게 차려입고 나가 벤치 위 눈을 조금 치우고 앉아서 겨울나무를 보고 싶어집니다.
방금 만들어진 발자국 위로 내리는 눈을 본 적이 언제였던가요?
타우로프는 부유한 약사의 아들로 오슬로 근처 크리스타냐에서 태어났습니다.
스물세 살 때부터 코펜하겐의 미술 아카데미에서 공부를 했는데 처음에는 바다 풍경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자 했습니다.
2년간의 공부를 끝내고 한스 구드 밑에서 다시 2년간 그림 공부를 하고는 미술의 중심인 파리로 건너갑니다.
시모아 강의 겨울
노르웨이 시모아 강이 겨울의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습니다.
적지 않게 내린 눈을 헤치고 허리 굽은 여인이 강가에 섰습니다.
여인 뒤의 나무 한 그루가 뒤에서 여인의 모습을 따라하고 있습니다.
앙상하게 남은 가지가, 겨울이어서 그럴까요, 더욱 힘들어 보이는데, 강물은 흰 산을 가득 안고 천천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강 건너 지붕 위, 푸른색 연기는 강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어딘가 눈 속에 묻혀 있을 배가 보였다면 덜 쓸쓸하지 않았을까요?
타우로프는 4년간 파리에 머물면서 바다와 해안 풍경을 그린 작품 몇 점을 살롱전에 출품합니다.
나름대로 성공을 거둔 그는 파리에서 당시 유행하던 프랑스의 사실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게 됩니다.
그가 보기에 사실주의는 노르웨이 화가가 꼭 배워야 할 것이었습니다.
특히 바스티엥 르파주를 존경했는데,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의 민족성 같은 것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대리석 계단 1903
방금 배에서 내린 붉은 치마의 여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출렁거리는 물을 건너와 단단한 대리석 포장길을 걷는 여인을 불러 세우고 싶습니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시는지요? 흔들리지만 마음대로 갈 수 있는 물인가요?
아니면 단단하게 내 발을 지탱해주지만 정해진 곳으로만 열려 있는 대리석 길인가요?
여인은 말이 없고 화가가 툭툭 던져 놓은 붓 자국 따라 물결이 출렁거리고 있습니다.
1879년 파리 생활을 마친 타우로프는 덴마크의 스카겐을 찾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스칸디나비아 반도 출신 화가들이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죠.
다음해에 오슬로로 돌아온 그는 본격적으로 노르웨이 화단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는 타우로프 개인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미술계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도르도뉴 강 1903
마을을 크게 돌아 나가는 강 위로 해가 졌습니다.
하늘에 걸린 남은 햇빛은 강을 거울삼았고 건너편 산은 이제 푸른색으로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얕은 물가에는 새 한 마리가 저녁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잔잔한 물소리가 가득한 강둑에서 마을을 건너다봅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고요하게 저무는군요.
한 해의 끝도 이렇게 저물었으면 좋겠는데, 제가 사는 곳은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
타우로프는 1880년대 노르웨이에 보다 진보적인 미술가들의 모임을 만들고 전시회를 여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런 노력으로 1882년 제1회 노르웨이 미술전시회가 열리게 되었죠.
또 그가 고향인 오슬로의 거리와 공원의 모습을 그린 작품들은
노르웨이 풍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습니다.
사람들은 타우로프를 당대 노르웨이의 미술계를 이끄는 화가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랑스의 강이 있는 풍경
숨은 그림 찾기처럼 사람을 찾았습니다.
꽃이 흐드러진 나무 밑, 짐을 진 여인이 밭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풍경입니다. 화면을 채우고 있는 것들 중에 화사한 색을 가진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원색과 원색의 중간색들이 모이면 이렇게 소박하고 편한 느낌을 주는군요.
튀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에 익숙해 있다가 이런 작품을 만나면 내가 얼마만큼 멀리 왔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참 많이 멀리 왔네요.
1889년, 마흔두 살이 되던 해 타우로프는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석해서
당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게 됩니다.
훗날 모네, 로댕과 친구가 되는데 이때 그들을 만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친분들이 프랑스와 노르웨이의 미술을 연결하는 고리가 됩니다.
프로그너 만의 저녁 1880
오슬로 프로그너 만의 저녁이 찾아왔습니다.
일을 끝낸 사내들은 농기구를 어깨에 매고 긴 둑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열심히 하루를 보낸 사내들이 귀가하는 모습은 정말 멋지지요.
물론 도시에서는 저런 모습이 이제 ‘삭제’되었지요.
집에 가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한 아이는 일어설 생각이 없습니다.
이제 그만 가야 하는 아이가 일어서서 재촉을 해보지만 쉽게 일어설 모습이 아닙니다.
별이 뜰 때까지 놀다가 엄마 팔에 끌려가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하늘에 걸린 구름, 잔광으로 황금색이 되었습니다.
만국박람회에 참석한 3년 뒤, 타우로프는 파리로 거처를 옮깁니다.
그곳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살게 되는데
막상 파리로 자리를 옮긴 그는 파리가 자신의 작품 소재가 아니라는 것을 곧 알게 됩니다.
결국 그의 대표작들은 몽트뢰유 쉬르 메르, 디에프, 보리유 쉬르 도르도뉴와 같은
작은 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신부
녹음 우거진 길을 따라 검은 사제복 차림의 신부님이 등장했습니다.
멀리 높은 첨탑의 교회에서 출발하셨겠지요.
길 옆 빨간 지붕의 집집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니 식사 때가 가까운 것 같은데 어디를 가시는 길일까요?
신부님이 가는 길과 우리들이 사는 집 사이에는 나무들이 마치 벽처럼 서 있습니다.
잠시 그 길에서 내려와 식사라도 하고 가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외롭고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우선 배가 든든해야 하거든요.
불과 몇 달 전 초록의 세상을 한참 즐겼는데 아주 오래된 풍경처럼 보이는 것은 지금 창밖이 겨울이어서 그렇겠지요.
타우로프의 작품의 많은 부분은 대단한 기교로 강물을 묘사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시적인 감흥이 가득한 배나 도시, 항구, 아름다운 다리 그리고 바다 풍경도 있습니다.
물에 관한 묘사는 제 기억에 아이바조프스키에 필적할 만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비온뒤 디예프의 시장 1894
한바탕 비가 내리고 난 뒤 하늘이 걷히고 있습니다.
구름 사이로 별이 보입니다.
비가 왔으니 별빛은 또 얼마나 맑을까요?
텅 빈 시장 광장 건너, 상점 몇 곳이 불을 밝히고 있고 건물에 걸어놓은 등은 점차 짙어지는 어둠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멀리 보니, 아! 달이 뜨고 있습니다.
하늘 저편이 환한 것을 보니 오늘 저녁의 어둠은 금방 부서지겠군요.
타우로프는 자신이 그리는 그림의 주제가 늘 비슷한 분위기를 갖는 것을 피하기 위해 끝없이 여행을 합니다.
프랑스와 스페인, 벨기에와 네덜란드, 그리고 노르웨이의 곳곳이 대상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여행만큼 사람을 키우는 것도 없습니다.
물론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이지만 모든 여행의 마지막은 돌아오는 데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은 의미가 없다고 말하면 너무 가혹한 것이 될까요?
천천히 흐르는 강물과 그 위에 다양하게 반사되는 것을 그리는 전문가가 되다시피 한 타우로프는
1년에 50점 정도의 작품을 제작했습니다.
물론 그 크기가 작았다고는 하지만 1주일에 한 편 꼴이니까 적은 양은 아니죠.
그런 그에게 프랑스와 튀니지에서는 훈장을 수여했고 그 외에 수많은 영예가 주어졌습니다.
화가로서 확실히 성공한 것이지요.
자정미사 1901
자정미사는 보통 성탄 때 많이 올립니다.
미사가 끝나고 보면 대개 자정이 가깝습니다.
성당에 불이 켜 있기는 하지만 성당으로 가는 길은 마치 대낮처럼 환합니다.
신을 만나러 가는 길, 늘 저렇게 환했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호인수 신부님의 시를 시화로 담은 작품을 한 점 얻었습니다.
나에게 향을 드린다
_
호인수
꽃 같은 젊은 수녀님 종신서원 미사에
복사가 내 앞에 와서
나에게 향을 드린다
으흐
향 연기 맵지 않아도
눈 못 뜨겠다
고개 못 들겠다
다음 주에는 고해성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고해할 것이 산더미 같으니 걱정입니다.
타우로프는 두 번 결혼합니다.
그가 스물일곱 살 때 스물두 살의 잉게보르그와의 결혼이 첫 번째였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은 12년 만에 이혼으로 끝이 납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해 노르웨이의 유명한 공증인의 딸인 알렉산드라와 재혼합니다.
타우로프가 서른아홉, 알렉산드라가 스물네 살이었습니다.
조강치처를 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면 지나친 상상의 결과일까요?
얼음에 뒤덮인 강 근처의 공장 건물 1892
오늘은 바람 끝이 매서웠습니다.
한편으로 겨울이 온 것이 반가웠지만 다름 한편으로는 불편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모진 시간이 되겠지요.
얼마나 추웠는지 그림 속 강물 위로 살얼음이 내려앉았습니다.
그래도 머지않아 얼음이 녹을 것 같습니다.
떠오르는 햇볕이 벌써 지붕 위까지 도착했거든요.
타우로프의 몇몇 작품에서는 인상파의 느낌이 있지만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었고
기본적으로 그는 사실주의의 틀 안에서 활동한 화가입니다.
그는 쉰아홉의 나이로 네덜란드의 볼렌담에서 세상을 떠나는데,
프랑스에서 거주했던 것을 생각하면 혹시 여행 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행의 끝은 돌아오는데 있다는 말이 다시 생각납니다.
[레스까페 2011.12.15]
프리츠 타우로프 노르웨이 미술과 프랑스 미술의 연결 고리가 되다 _레스까페(Rescape) 선동기 http://blog.naver.com/dkseon00/140147304470
네이버 파워블로그 <레스까페>의 쥔장 선동기님은 블로그에 올린 글과 그림을 모아 2009년 <처음 만나는 그림>이라는 책을 아트북스에서 펴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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