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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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경복궁 향원정 에서

매루 2012. 7. 13. 23:37

 

 

 

고종임금은 아버지인 대원군의 섭정이 끝난후 정치적인 독립의 의지로 

고종 10년(1873), 자신과 가족들의 거처인 건청궁을 짓고  그 앞에 연못을 파고,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2층의 육모지붕을 얹은 정자를 짓습니다

이 연못과 정자에 향기가 멀리 퍼지라는 뜻의 향원 이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이것이 향원지(香遠池)와 향원정(香遠亭) 입니다.

 

 

 

 

 

향원정에서 바라본 건청궁

향원지와 향원정은 고종임금과 명성황후께서 거처하시던 건청궁에 딸린 연못과 정자 입니다

1895년 일제와 일본낭인들은 건청궁에 난입을 하여  명성황후를 시해 하는 만행(을미사변)을 저지릅니다

 명성황후의 시신은 건청궁 뒤 녹산에서 불태워졌고,

이 사건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임금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이어 하면서(아관파천)

건청궁은 한동안 방치중 1909년 철거되었다가 그후 근 백 년만인 2007년에야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읍니다

 

 

고종임금은 이곳에서 외교사신들과의 각종 연회를 열었었고

겨울이면 향원지의 얼음위에서 외국 선교사들이 스케이트 시연회가 열렸었는데

그들이 얼음위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 모습을 보시고 박장대소를 하곤 하셨답니다

 

 

에디슨이 백열등을 발명한지 불과 8년만에 향원정의 물을 끌어  발전기를 돌려 건청궁의 전등에 불을 밝혔느데 

불이 켜졌다 꺼졌다 반복함에 건달불(乾達火)라고 불리우기도 했답니다

그래도 향원정 연못가에 세워진 발전 설비는 당시 동양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16촉 백열등 750개를 점등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합니다

 

향원정 2층 내부

 

 

 

봄기운이 시작되던 2012, 4, 4  경복궁 향원지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1895년(을미년) 에 일어났읍니다

지구에 인류가 생겨나 나라라는 형태의 집단이 생긴후 전쟁중이 아닌 평시에 군인이나 공무원이 아닌 낭인들이

다른나라의 궁궐에 난입하여 국모를 처참히 살해한 역사는

일제가 저지른 명성황후시해(을미사변)외에는 전무후무한 천인공로할 만행 입니다

이 잊을수없는 치욕적인 일이 을미년(1955년)생인 제가 태어나기 60년전에 일어났읍니다

제가 태어나기전인 60년동안 우리조상들은 이 치욕의 사건에 아무것도 한것이 없었고

제가 태어난후 다시 6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여서 안타깝습니다

더더욱이 안타까운것은 이명박대통령과 현정권의 이해못할 대일외교행보 입니다

우리민족이 일본에게 가지고있는 좋지못한 감정이 비단 명성황후 문제뿐만이 아닐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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