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건화 생각 본문
어제는 봄볕도 포근하고 하늘도 맑기에 인천대교와 팔미도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위해 송도 흥륜사엘 갔읍니다
생각과는 달리 각도가 맞질 않아서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쪽으로 와서 나름대로 촬영을 마친후
그곳에서 송도역까지의 옛길을 걷고싶은 마음이 생겨서 막상 그길을 걷자니 옛정취는 조금도 느낄수 없게끔
길도 넓혀졌고 길 주변에는 고층 아파트군과 상가건물들의 간판이 어지러웠읍니다
옛송도역 부근에 이르자 소래포구 10,3 km라는 교통표지판이 보였읍니다
문득 건화라는 이름의 옛친구가 생각이 났읍니다
70년대 초반에 무슨 이유였는지 건화는 옷가지들을 보따리에 싸가지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행상생활을 잠간 했던적이 있었읍니다
인천시내에서는 시장이 활성화되어 장사가 여의칠 않았기 때문에 건화는 인천의 변두리 지역을 찾아 다녔었고
그러한 건화에게는 당시로서는 시골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많이 모이는 수인선의 송도역전이 제격 이었읍니다
실제로 송도역전에는 예전의 수인역전의 수인시장만은 못해도 나름대로 장이 서곤 했었읍니다
그러던 어느날 수인선 열차가 송도역까지 못오고 소래역 까지만 올수밖에 없었던 기간이 있었읍니다
훗날 건화는 이시기에 눈물겨운 경험과 인생공부를 했었다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주 이야기를 했읍니다
크나큰 수해 때문 이었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그당시 소래는 인천과 교통이 두절된 상태 였고
건화는 보따리를 메고 송도역에서 소래까지 걸어 가야만 했었는데
논이나 염전을 확보하기 위하여 갯벌을 메운 뚝위를 달리던 수인선 열차길은 리아스식해안의 구불구불한 육지길보다는
엄청나게 직선화되어 시간도 절약되는 빠른 길 이었지요
송도역에서 소래까지의 비포장도로를 한여름의 뙤약볕을 쪼이며 걸어가면서 가도가도 그동네가 그동네같고
저산모퉁이 돌아서면 뭔가 가까워질것 같지만 막상 돌고나면 또 똑같은 풍경의 당시 인천 변두리 바닷가 풍경 이었겠지요
오늘 제가 길에서 본 소래포구 10,3Km라는 교통안내 표지판은 옛날 수인선열찻길보다 더 직선화된 길 의 거리가 그렇다는 이야기 이니까
그때 건화가 걸었던 그길은 30리길이 족히 넘는 먼길 이었겟지요
저와 저희들 또래들이 군에 입대하기 시작하던 70년대 중반에 건화는 동인천의 복지다방 이라는 음악다방에서 DJ생활을 했읍니다
건화는 신청곡이 아무리 밀려도 자기 임의대로 트는곡이 두곡이 있었읍니다
첫번째곡이 코코브라더스가 리바이벌해서 불렀던 이별의 종착역 이었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길,,,,,"이라는 가사가
건화 자신이 죽을때까지 잊지못할 옷보따리를 메고 송도역에서 소래까지 걸었던 추억 때문 이라고 이야기 했읍니다
그당시 건화에게는 지금은 이름이 기억이 나질 않지만 교제를 하고있던 여인이 있었읍니다
그녀는 퇴근후면 매일 똑같은 시간에 건화가 일하고있는 복지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건화는 이시간에 맞추어 "나하나의 사랑"이 들어있는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준비하고 있다가
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의 모슴이 보이면 재빨리 믹서기를 조정하고 다방에서는 "나하나의 사랑"이 흐르기 시작 했었지요
제가 군생활을 마치고 다시 동인천 거리를 찾았을때 건화는 "나하나의 사랑"의 주인공인 그녀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난 후 였읍니다
오늘 송도 옛길에서 본 소래포구 교통표지판을 보면서 벌써 오래되어버린 건화와 "나하나의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박물관에서 바라본 청량산
수인선이 1937년에 개통된 협궤철도 인데 구간이 송도역과 수원역 사이라고 설명이 되어있는데
제가 살던 용현동과 숭의동 수인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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