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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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常

꽃게 이야기

매루 2011. 11. 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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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후(1965~1968)에 아버지 께서는 인천용현동의 옛낙섬에 있던 부랑아보호시설(고아원 으로 불리움)의 원장으로 근무를 하셨었읍니다

전쟁통애 부모와  떨어져  앵벌이 구두닦이 거지생활을 하며 거리를 떠돌던 소년들을 수용하는곳 이었는데

그곳의 관사(館舍)에서 저희식구들도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약 3년여동안 그곳 부랑아 수용소의 부랑아들은 제 어릴적 동무들 이기도 했었읍니다

아버지께서 그곳에 부임 하시며 제일 처음으로 하셨던일이 인천 변두리의 산꼭데기에 있는 그곳에 상수도 시설을 하여서 원생들의 위생에 획기적인 변화를 꾀하셨고

당시 월미도에 주둔해있던 미군부대측의 도움을 요청 하시어 미군공병들이 불도져등의 중장비를 가져와 산비탈을 개간을 해주었고

그곳에 콩,고구마,감자,무,배추,시금치등의 채소를 심어, 쌀한톨 섞이지않은 꽁보리밥에 간장도 아닌 소금으로 간을한 멀건 시레기국으로 매끼니를 해결하던

그곳 원생들의 부식조달에 큰도움을  꾀 하였읍니다 

여름이면 바다에 물이 빠지는 시간에 원생들 모두가 갯벌에 들어가 당시 지천으로 널려있던 조개,맛살등을 줍고  낚시로 망둥이등의 물고기와

물살이 제법 센 갯고랑에서 그물을 쳐서는 바닷장어,숭어,등의 고기를 잡아다가 손질하여 소금을 저며 햇볕에 말려서 겨우내 부식으로 사용을 했었읍니다 

그때 저도 원생들과 함께 빠지는 물을 따라 바다멀리까지 나가서 맨발에 느껴지는 감촉으로 뻘속의 조개도 줍고

짐승의 사체를 새까맣게 뒤덮고 있었던 소라와 낙지 무더기도  그때 직접 목격을 하기도 했읍니다(그후 제가 소라와 낙지를 다시 먹기 시작하기까지 40년이 걸렸읍니다)

물이 특히 많이 빠지는 사리때면 갯벌과 물이 만나는 지점의 얕은 물가에 꽃게들이 무척 많이 헤엄을 치고 있었는데 겁이 많은 저는 그꽃게를 잡지 못했고

저와 일행인 부랑아 엉아들이 열심히 그리고 많이 잡았읍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그것들을 커다란 가마솥에다 쪄서 배불리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있읍니다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해에 물망초클럽(인천시내 남녀고교생들이 모여만든 독서동아리)의 재학생 후배들을 인솔하고 덕적도로 하계농어촌 봉사활동을 갔었읍니다

인천 연안부두를 출발하여 덕적도 서포리에 오후 6시경에 도착을 하였고 우리는 서포리해수욕장의 뒷산을 넘어 우리의 목적지였던 북리 라는곳까지

3시간여의 행군을 해야 했는데 그때 보았던 해지기 시작하는 서해고도의 절경과 황홀한 노을은 영원히 잊지 못할것 입니다

우리일행이 북리에 도착 했을때는 때마침 그믐즈음 이었고 제한송전(밤 9시가 되면 발전기를 껐음)바람에 희미한 촛불에 의존하여 라면으로 요기를 한후

너나할것없이 지친몸들은 곧장 잠에 골아 떨어졌읍니다

다음날 새벽 황홀한 소리에 우리는 잠에서 깨었읍니다

어두워서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곧장 잠들었던 우리들의 숙소의 창문을 여니까  정박해있는 배들이 바로 우리숙소앞에서 푸른 바닷물에 흔들리고 있었고  

우리들의 잠을 깨운 갈매들이 평화롭게 날으며 소리를 지르는 경관이 펼쳐져있는 덕적도 북리마을  작은 어촌의 풍경이 정말 황홀 하였읍니다

잠시후 젊은 우리들의 시장기를 재촉하는 냄새가 우리들의 코를 자극 하기 시작하였고 그냄새를 찾아간 부뚜막에는

소여물을 쑬때나 사용할법한 엄청나게 큰 가마솥이 김을 힘차게 뿜으며 대형 솥두껑을 진동 시키고 있었읍니다

잠시후 솥두껑을 열자 솥안에는 요즈음 흔히보는 피자크기만한 꽃게들이 한솥 삶아져 뻘건빛을 띠우며 우리들의 목에 침넘어가는 소리를 유발하기 시작 햇읍니다

우리 회원중의 한학생이 이곳출신이고 우리가 머문곳이 그학생의 이모님댁 이자 그마을 이장님댁 이었읍니다

그학생의 이모부님께서는 어두운새벽에 우리들을 위하여 꽃게그물을 걷는 수고를 하신후 곧바로 가마솥에 삶기 시작 하셨던것 입니다

 

위 두번의 일을 경험한 저는 훗날 그리고 지금까지도 꽃게를 먹질 않습니다

우선 곷게 껍질을 부수고 까야하는 수고와 번거로움에 비하면 입에 넣어지는 양이 너무 감질이 나고 맛 또한 그때만 못하기 때문 입니다

위 두번에서 느꼈던 시각적 미각적인 멋과 맛을 느낄수 없기 때문 이지요  "나 같으면 없어서 못먹는데,,"라며 흉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제또래의 인천토박이 그리고 서해 섬출신 사람들중에는 제 말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것도 사실 입니다

어제 제 여동생 부부가 선물을 받았다며 꽃게 한박스를 저희집에 가져 왔읍니다

서해 소청도에서 부쳐온 꽃게인데 두껑을 여니까 버버버글 힘차게 움직이는 살아있는 꽃게 였읍니다

꽃게를 다루어 보질않은 여동생은 저희식구들 먹으라며 내놓았지만 결국은 제 아내가 게무침,간장게장을  만들어 식구들에게 나눠줘야하는 수고가 생긴것 이지요

오늘 내일 저희 어진내 주변에 살고 게시거나 지나가는 분들은 꽃게음식 냄새를 맡게 되겠군요

 

 

 

 

 

 

 

 

 

해마다 꽃게철이면 저희 어진내 주방 구석에는  매일 40~50Kg의 꽃게들이 들어 옵니다

산채로 사가는 사람들, 꽃게탕 ,게장백반 손님들,,,,,,

이따금씩 제 친구들이나 이웃들이 모여서 푸짐하게 쪄먹는 꽃게찜 은 그야말로 잔치 입니다

서해상에서 남과 북간의 긴장상태가 해소되면 제가 어릴적 보고 맛보았던 솥두껑만한 꽃게들을 볼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