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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 꽃 이야기

수선화

매루 2023. 3. 12. 19:18

하늘이(저희 부부가 기르고있는 진돗개)와의 산책길 어느 팬션의 마당꽃밭에 수선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 하였읍니다

 

 

 

■ 박원순의 꽃의 문화사 - ③ 수선화

古代 그리스 시인들이 노래하고 무슬림도 소중히 여긴 꽃…

동양에선 ‘물가의 신선’의미로 水仙이라 불러
셰익스피어 “제비가 돌아오기도 전에 3월을 아름답게”…

2만여 품종이 지구의 봄 밝혀와

셰익스피어가 ‘겨울이야기’에서 “제비가 돌아오기도 전에 피어나 3월의 바람을 아름답게 사로잡는다”고 찬사를 했듯,

수선화는 이른 봄꽃의 대명사다.

마치 한해살이 꽃처럼 매년 대규모로 사용되는 튤립과 달리

한번 심은 자리에 해마다 믿음직스럽게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수선화는 정원을 빛나게 하는 진정한 봄꽃이다.

춥고 긴 겨울 끝에 화사한 꽃으로 얼굴을 내밀고 인사하는 수선화는

사람들에게 이제 따뜻한 봄이 오고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을 전한다.

많은 사람이 수선화라고 하면 노란 수선화를 떠올린다.

아마도 윌리엄 워즈워스의 시 ‘수선화’, 영화 ‘닥터 지바고’,

양희은의 번안곡 ‘일곱 송이 수선화’에 나오는 황금빛 수선화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일 것이다.

수선화는 언제부터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인류의 수선화 예찬은 문명의 가장 이른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그때의 수선화는 노란색 꽃이 아니었다.

수선화는 대부분 이베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 지역이 원산지인데,

아주 이른 시기부터 전 세계로 퍼져나가 자생했다.

전 세계적으로 수선화는 원종만 50여 종, 그간 개발된 품종은 2만 종이 넘는다.

꽃 색깔도 흰색과 노란색 위주의 원종으로부터 녹색과 분홍색, 오렌지색과 붉은색 등 매우 다양한 농도와 채도로 분화됐다.

수선화는 우리가 편의상 꽃잎이라고 부르는 꽃덮이 조각들(미분화된 꽃받침조각과 꽃잎),

그 가운데에 컵 또는 나팔 모양으로 생긴 부화관을 가지고 있다.

영국왕립원예협회(RHS)는 꽃덮이 조각과 부화관의 색깔과 모양, 크기의 상대적 비율에 따라

수선화를 13개 분류군으로 나누고 있다.

가령 노란색 수선화로 유명한 ‘더치 마스터’(Dutch Master)란 품종은

트럼펫처럼 생긴 부화관이 꽃잎보다 길어 1번 분류군에 속하고,

노란색 겹꽃에 짙은 주황색 부화관이 있는 ‘타히티’(Tahiti)라는 품종은 4번 분류군에 속한다.

(미국 롱우드가든에서는 매년 3월 말 수백 종에 이르는 다양한 꽃 모양의 수선화를

한 송이씩 좁고 긴 유리병에 담아 감상하는 전시회를 개최한다.)

수선화는 16세기 네덜란드에 상륙한 이래로 무수히 많은 품종이 개발돼 전 세계로 유통됐다.

 19세기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그린 ‘에코와 나르키소스’.


고대의 신화와 전설, 역사 속에 등장하는 세 종류의 대표적인 수선화 원종으로는

타제타수선화(N. tazetta), 존퀼라수선화(N. jonquila), 포에티쿠스수선화(N. poeticus)가 있다.

타제타수선화는 수선화 가운데 키가 가장 크고, 하나의 튼튼한 꽃대에 세 송이에서 스무 송이까지 꽃이 달리며,

흰색 꽃덮이 조각과 노란색 부화관을 가졌다.

이런 꽃의 모양과 색깔 때문에 금잔옥대 혹은 금잔은대로 불리는 수선화도

타제타수선화의 변종(N. tazetta var. chinensis)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제주에서 널리 자라며 눈 내리는 겨울에 꽃을 피워 설중화(雪中花)라고도 불렸다.

꽃덮이 조각과 부화관이 모두 노란색인 존퀼라수선화는 작은 꽃이 하나에서 다섯 송이까지 달리며,

부화관이 넓은 편이고, 꽃덮이 조각은 활짝 펼쳐지거나 뒤로 젖혀진다.

포에티쿠스수선화는 하나의 꽃대에 한 송이 꽃이 달리는데,

6장의 꽃덮이 조각은 순백색이고, 매우 짧은 부화관은 보통 중심이 노란색이고 테두리는 붉게 장식돼 있다.

 

이 세 종류의 수선화 가운데 포에티쿠스수선화는 가장 특별하다.

최근 유전자 지도가 최초로 밝혀지기도 한 이 수선화는 인류 역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재배된 수선화 가운데 하나로,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수선화로 여겨지고 있다.

종명인 포에티쿠스는 시인을 뜻하는데, 그만큼 고대부터 많은 시인이 자주 이 수선화를 노래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수선화의 속명인 나르키소스(Narcissus)란 이름에는 아주 유명한 그리스 신화가 얽혀 있다.

매력적인 숲의 요정 에코의 구애를 외면한 죄로 보복의 여신 네메시스에 의해 벌을 받아

평생 연못에 비친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러 수선화가 된 나르키소스 이야기가 그것이다.

자기애를 뜻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 역시 여기서 나왔다.

원래 나르키소스는 ‘무감각’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온 말인데,

이것은 수선화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동물을 마비시키는 알칼로이드 성분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성분 때문에 수선화꽃을 꺾어 다른 꽃들과 함께 물에 담그면 다른 꽃들마저도 해를 입는다.

또한 사람이나 동물이 잘못해 수선화 구근을 먹었다간 해를 입을 수 있다.

이런 독성은 신화 속에서 지독한 자기애에 빠져 주변의 관심을 모두 거부한 나르키소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한편 대퍼딜(daffodil)이라는 영어명은 역시 지중해 지역에서 자라는 꽃 이름인 아스포델(asphodel)에서 유래했다.

중국과 우리나라에서 이 꽃을 부르는 이름인 수선(水仙)은 말 그대로 물가의 신선이라는 뜻이다.

신선이라는 이름을 부여할 정도로 수선화는 동양의 문화권에서 주로 선비들에 의해 높이 칭송받았다.

중국 북송 시대에는 황정견(黃庭堅) 등 걸출한 시인들이 수선화를 예찬하는 시를 썼고,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시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김흥국(金興國), 김창업(金昌業) 등 문인들이 수선화에 관한 시를 읊었다.

특히 추사 김정희의 수선화 사랑은 유명하다.

그는 수선화를 매화와 비교하며 물가에 핀 해탈한 신선(淸水眞看解脫仙)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수선화는 이슬람 문화에서 특히 중요하게 다뤄졌다.

예언자 무함마드(570∼632)는 빵이 두 조각 있다면 그중 하나는 몸을 위해 먹고

다른 하나는 수선화와 바꿔 마음의 양식으로 삼으라고 가르치기도 했다.

서로마 제국의 멸망 이후 그리스와 로마의 중요한 약초 의학서들을 아랍어로 번역해

고전 시대의 지식을 보존했던 무슬림은 정원 디자인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그들이 공고하게 기틀을 잡은 4개의 사각형 화단으로 이뤄진 사분정원(四分庭園·Chahar Bagh)은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정형식 정원의 기본 형태가 됐다.

여기에는 물, 우유, 꿀, 포도주를 뜻하는 4개의 강을 상징하는 수로가 흘렀으며

향기 나는 열매,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들, 여러 가지 꽃이 무성했다.

양귀비, 히아신스, 붓꽃, 카네이션 등 오늘날 우리가 재배하는 많은 꽃이

바로 이슬람 정원을 가꾼 아랍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소개된 것들이다.

이슬람 문화에서 정원은 지상에 구현된 천국을 의미했고, 식물들은 코란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이런 이슬람 정원에서 포에티쿠스수선화가 특별한 2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 사람들은 이 꽃에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는데,

6장의 순백색 꽃잎 가운데 붉은색으로 테두리가 화려하게 장식된 짧은 부화관이 영락없이 꿩의 눈을 닮아서다.

포에티쿠스수선화는 ‘시인의 수선화’라는 애칭에 걸맞게 많은 시인의 사랑을 받았다.

시인 아부 누와스(756∼814)는 “금을 녹인 눈동자를 가진 은빛 눈이 에메랄드빛 줄기와 결합돼 있다”고 묘사했다.

포에티쿠스수선화는 마치 시인과 같은 눈을 상징하며 사랑을 알아보는 존재로 여겨졌다.

두 번째 매력은 히아신스와 재스민이 뒤섞인 듯한 향기다.

이슬람 정원에서 향기는 꽃의 색깔만큼이나 중요한 기쁨을 주는 요소였는데,

계절별로 이슬람 정원의 향기를 담당한 꽃은 수선화 말고도 장미와 재스민, 라벤더가 있었다.

포에티쿠스수선화가 만발한 정원에 산들바람이 불면 그 향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그래서 이 꽃에서 향수 원료로 가장 인기 있는 수선화 오일을 추출하기도 했다.

(향이 어찌나 강한지 밀폐된 공간에서 많은 양을 흡입할 경우 두통과 구토를 유발할 수도 있다.)

향기로운 수선화가 가득한 이슬람 정원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그 정원은 4개의 사각 화단이 4개의 수로에 의해 나뉘어 있고 가운데에는 이 수로들이 교차하는 사각 연못이 있다.

화단은 길보다 아래쪽에 가라앉은 높이로 조성돼 길가에서 과일나무에 달린 열매를 쉽게 딸 수 있었다.

과일나무 밑에는 향기로운 수선화들이 가득했다.

이렇게 향기롭고, 편안하고, 세련된 이슬람 정원은

수 세기 동안 지구상 가장 아름다운 파라다이스와 같은 모습으로 가꾸어졌다.

 포에티쿠스수선화(Narcissus poeticus)

 

 

수선화를 정원에 들이는 것은 아주 쉽다.

수선화는 물 빠짐만 좋다면 토양을 가리지 않는다.

가을에 볕 잘 드는 정원 한편에 수선화 알뿌리들을 원하는 만큼 심어 놓으면 끝이다.

키도 크고 관상 가치가 높아 정원에 사용하기 그만이다.

3∼4월쯤 꽃이 피고 진 다음에는 꽃대를 잘라주고 잎은 노랗게 시들 때까지 그대로 둔다.

그래야 잎을 통해 광합성이 이뤄져서 내년에 또 잎과 꽃을 내기 위한 양분이 알뿌리에 모인다.

알뿌리 하나는 4, 5년 동안 생존하지만 해마다 새롭게 생겨나는 새끼 알뿌리들이 계속해서 뒤를 이으며

봄의 화사한 꽃들을 보장해 준다.

수선화는 자아도취, 허영심, 죽음이라는 다소 부정적 의미도 있지만

탄생·갱생·봄·고결함·추모·새로운 시작·힘과 용기 등 좋은 상징으로 더 많이 쓰여 왔다.

실제로 캐나다암협회(Canadian Cancer Society) 등 전 세계 수많은 자선단체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른 봄 수선화가 피지 않는 정원을 상상할 수 있을까.

매년 3월 말이면 추사 김정희 고택 담벼락에 가득 피어난 수선화를 보며,

그 한 송이 한 송이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언젠가는 우크라이나의 수십만 평에 달하는 수선화 계곡을 가득 덮은 순백색의 포에티쿠스수선화가 피어난

장관을 감상하게 될 날도 오길 고대해본다.

지구 곳곳의 땅속에 아주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수선화 알뿌리들이 파헤쳐지지 않는 한,

고대부터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언제나 수선화는 시인과 정원사를 비롯한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며

지구의 봄을 환하게 밝혀 줄 것이다.

국립세종수목원 전시기획운영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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