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노래 Erev Shel Shoshanim와 양주동 박사 : 본문

뮤즉

노래 Erev Shel Shoshanim와 양주동 박사 :

매루 2020. 1. 24. 18:56






  •  Erev Shel Shoshanim (The New Christy Minstrels)







  • Erev shel shoshanim (장미가 가득한 저녁에)
  • Nana Mouskouri



  • 이명우






  • 제가 고등학교 3학년 국어시간에 배웠던 양주동박사의 <가시리 평설(評說)>
    그때 국어담당 선생님(故 김경오 은사님)께서는
    이글의 저자인 양주동박사가 당신의 대학시절(동국대학교) 담당교수 이셔서 였는지 
    저희들에게 <가시리 평설(評說)>을  가르치시면서 이두 여러모로 평소보다 진지하고 신이 나 계셨었읍니다 
    선생님 께서는 일본식 교육을 받으셨고 사랑의 회초리를 빙자한 폭력적 체벌이 난무했던 군사정권 시절 이었음에도
    제자들에게 강요나 회초리 보다는 달래고 설득에 애 쓰셨읍니다
    참스승 이셨던  선생님이 그립습니다





      가시리 평설(評說)  

    양주동


    별리(別離) 제재(題材) 시가(詩歌) 고금(古今) 동서(東西) 무릇 얼마리요마는,

     가시리 (一篇), 통편(通篇) 육십 () 이십 (數語) 소박미(素朴味) 함축미(含蓄美),

      절절(切切) 애원(哀怨), 면면(綿綿) 정한(情恨),

    아울러 귀법(句法), 장법(章法) 따를 만한 노래가 어디 있느뇨?

    후인(後人) 부질없이 다변(多辯) 기교(技巧) 췌사(贅辭) 기어(綺語)로써

    () 수천(數千) () ()기백(幾百) () 늘어놓아,

    () 자기의 일편(一片) 정한(情恨) ()하려 하되,

    하나도 일편(一篇)의취(意趣)에서 더함이 없고, 오히려 (數行) 충곡(衷曲) 미침이 많으니,

    노래야말로 동서(東西) 문학(文學)별장(別章) 압권(壓卷) 아니랴!

    (江淹)별부(別賦)’ 기려(綺麗) 흘러 애초에 실감(實感) 결여(缺如)하고,

    셸리의야별(夜別)’ 재치(才致)앞서 드디어 심충(深衷) 겸연(慊然)하니,

    일편(一篇) () 차종(此種) 문자(文字) 기조(總基調), 원류(總原流)된다 할지라,

    뉘라서 () ()하되 다시 지리(支離) 언사(言辭) 분운(紛紜) 장절(章節)로서

    () 일편(一篇) () ()하료?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수구(首句) 두연(斗然) 붓을 일으켜 원사(怨辭) 직핍(直逼)하였다.

     “가시리 가시리이꼬,

    임은 정작 가시리이꼬. 나를 버려 두고 임은 기어이 가시리이꼬.”

     기구(起句) 문득 돌올(突兀)함이 천인(千忍)단애(斷崖) 같고,

    행문(行文) 어이 급박(急迫)함이 일조(一條) 급류(急流) 연상(聯想)을 하 한다.

    그러나 돌올(突兀) 급박(急迫) 속에 얼마나 표현(表現) 이전(以前) 기나긴 사연이 생략(省略)되어 있느뇨?

     

    처음 가신단 말씀을 들었을 때엔 그것이 오히려 농담(弄談) 혹시 나를 울려 보려는 짐짓으로만 생각하였더니,  

    급기야(及其也) 그것이 참인 줄을 알자, 얼마나 임께 기나긴 말씀을 하소연하였던고.

    그러나, 그것도 지금엔 모두 쓸데없는 ,

    정작 임이 떠나시는 마당에 다시 무슨 경황으로 어젯날의 기나긴 사연을 되풀이할꼬.

    일체(一切) 장황(張皇)사설(辭說) 지금엔 모두 췌사(贅辭) 아니랴!

    급박(急迫) 감정(感情) 얼크러진 심서(心緖), 그러매로 일체(一切)군소리와 일체(一切) 생각을 거부(拒否)하고, 다짜고짜로 원사(怨辭) 돌진(突進)할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원사(怨辭) 원사(怨辭)이면서 가의(歌意) 스스로 애소(哀訴) 함축(含蓄) 가졌으니,

    가시리 가시리잇고

    () 아직도 의아(疑訝)하는 (), () 아직도 단념(斷念)ㅎ지 못하는 ()

    일양(一樣) 문자리(文字裏) (數種) 정취(情趣) 아울러 은현(隱見)됨을 면밀(綿密) 음미(吟味)하라.

    모종(某種) 화학적(化學的) 물질(物質)()으로 문자(文字) 지면(紙面) 불에

    문득 다른 문자(文字) ()하는 법이 있다 한다.

    노래의 수연(首聯) 바로 비밀(秘密) 감춘 것이니,

    묘처(妙處) 가시리 () 반복(反覆)리잇고

    유원(悠遠) 처절(悽絶) 운율적(韻律的) 정조(情調) 있는 것이 아닐까.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2() ()이다. 대개(大蓋) 간절(懇切) 생각과 지극(至極) 정념(情念)

    스스로 절연(截然) 일절(一節)로써 완전(完全) 끝나지 못하는 것이니,

    이른바 낭후(浪後) 파문(波紋) 있고, 격동(激動) 여진(餘震) 짝함이 그것이다.

    전절(前節) 애원(哀怨) 본연(本聯)에서 다시 첨가적(添加的)으로 부연(敷衍)됨은

     정사(情思) 곡진(曲盡)함과 행문(行文)주도(周到) ()함일새,

    ()ㅎ건댄 단애(斷崖) 두기(斗起)하되 또한 여세(餘勢) 있고,

    장폭(長瀑) 내려지되 스스로 심홍(深泓) 이룸과 같다.

    임은 가시면 가는 곳마다 () 위안(慰安) 있고 () 행락(行樂) 있으련만,

      나는 없으면 죽은 몸이라, 대관절 나는 어찌 살라하고 차마 버리고 가시리이꼬.”

    서정(抒情) 형식(形式) 전연(前聯)여세(餘勢) 빌었으나,

    가의(歌意) 점층(漸層) () ()하여, 급업(岌嶪) 속에 스스로 하나의 단락(段落) 이루었다.

     

             잡사와 두어리마나는

    선하면 아니 올셰라

     

    문득 3() 일전(一轉) 보라!

    어떻게 삽상(颯爽) 전환(轉換)이며, 얼마나 경이적(驚異的) 타개(打開)인가.  

    행문(行文) 임리(淋漓)하여 거의 산궁(山窮)ㅎ고 수진(水盡) 경계(境界) ()하였더니,

    착의(着意) 일전(一轉)하매 진작 유암(柳暗)하 화명(花明) 시야(視野) 전개(展開)되지 않느뇨.

    그리도 무정(無情)스레 자꾸만 떨치고 가려는 임을 낸들 억지로라도 붙잡아 생각이야 없으리요마는,

    만일 그리한다면 행여나 임께서 선하게 생각하시와 다시는 오지를 않을세라.

    묘처(妙處) ()선하면 () 돌올(突兀) 자세(姿勢) 있다.

    이를 일러 천래(天來) 기어(奇語) 할까, 의표(意表) 착상(着想)이라 할까.

    (), 촌철살인(寸鐵殺人) () 있어, 통편(通篇) 영활(靈活)하 하며,

    전연(全聯) 약동(躍動)ㅎ게 하여, 예리(銳利) 섬광(閃光) 지배(紙背) ()하려 한다.

    대개(大蓋) 대불(大佛)개안(開眼) 바로 (), 승요(僧遙) 점정(點睛) 정작 1(一語).

     

    본연(本聯) 2() 사의(辭意) 스스로 연결(連結)되면서,

    각귀(各句) 다시 각귀(各句)대로 독립적(獨立的)으로 묘미(妙味) 가졌다.  

    억지로 붙들기만 하면 제마무리 거센 임이라도 뿌리치고 가지는 못하려만” 

     대개 전귀(前句) 뜻은 임과 나를 아울러 믿음이나,

    이것이 () 지극(至極) 사랑의 가엾은 자신(自信)일지요,

    () 어리석을손 사랑하는 이의 하염없는 생각이리라.

    그렇지마는 억지로 그랬다가는 임이 혹시 선한 생각에 다시 올세라.”

    후귀(後句) 얼마나 혼자의 안타가운 사정이며, 은근(慇懃) 걱정이며, 모를 가엾은 델리커시이뇨.

     

    그러나,  다시 전후귀(前後句) 허실법(虛實法) 주의(注意)하여 것이다.

    전귀(前句) () ()하고후귀(後句) () ()하니,

    대저(大抵) 전귀(前句)잡사와 두어리마나난 한번 짐짓 자신(自信) ()하는 ,

    제법 가는 임을 가게 수도 있는 뽐내어 봄이로되, 속살은 벌써 뻔한 체념(諦念) 고백(告白) 것이니,

    다만 허세(虛勢)() 뿐이요,

    후귀(後句)  “선하면 아니 올셰라.” 겉으로 () ()하는 , 약음(弱音)으로 ()하는 듯하면서도,

    기실(其實) 어느덧 하문(下文) 후약(後約) 빌미를 만들고자 함이니,

    마디로 말하면 전귀(前句) 금이종(擒而縱)이요후귀(後句) 종이금(縱而擒)이다.

    금종(擒縱) 허실(虛實) 교차(交叉)되는 ()

    어느덧 다음 ()에서 후약(後約)머무를 토대(土臺) 이미 완성(完成)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겉으로 잔도(棧道) 닦는 체하고 속살론 진창(陳倉) 건너는 한신(韓信) 용병법(用兵法)이다.

     

    셜온 보내오노니

    가시는듯 도셔 오쇼셔

     

    본연(本聯) 결사(結辭). ()한들 무엇하며, ()한들 무엇하며,

    짐짓 반발(反撥)하고 다시 눙쳐 본들 또한 무엇하랴.

    초연(初聯)으로부터 2, 3() 지내 몇몇 층절(層折) 우회(迂廻) 모두 결어(結語) ()함이었다.

    이도 저도 하여, 설운 임을 이제는 하는 없이 보내옵노니,

    가시기는 가셔도 지금 가실 그렇게 총총(怱怱) 가시는 ,

    제발 총총(怱怱) 고대 다시 돌아서 오소서.

    ”  결귀(結句) () 언제나 무한(無限) 의취(意趣), 이른바  사진 의부진(辭盡意不盡)’ 경지(境地) 있다.

     하물며 길도 떠나기 전에 먼저 돌아올 기약(期約)부터 묻는 것은 고금(古今) 별리(別離) 통유(通有) ()임에랴.

     

    우리는 () 읽어 끝에, 결귀(結句) 은근(慇懃) 정서(情緖) 끌려서,

    수귀(首句) 원사(怨辭)이었음과  2() 점층적(漸層的) 부연(敷衍), 3() 금종(擒縱) 허실(虛實) ()

    기다(幾多) 층절(層折) 지내 것을 거의 망각(忘却) 뻔하였다.

    그러나, 작자(作者) 오히려 이를 먼저 염려(念慮)함인지,

    결귀(結句) ()가시는듯 () 잊지 않았으니,

    대개(大蓋) “가시는듯 도셔 오쇼셔.” 얼른 보면 순연(純然) 부탁(付託) ()이언만,

    () 가는 걸음의 너무나 총총(怱怱)함을 원망하는 사의(辭意) 은연중(隱然中) 이에 포함(包含)되어 있으매,

     이것이 또한 일자(一字) 양의(兩義) 묘체(妙諦), 허실(虛實) 상조(相照) 비법(秘法) 동시(同時),

    원사(怨詞) 원사(怨詞)로써 끝막는 수미쌍관(首尾雙關) 장법(章法)이다.

    그리하여, 전편(全篇) 사의(辭意) 스스로 환상(環狀) 이루어 무한(無限)정취(情趣) ()하나,

    결어(結語) 결어(結語)대로도셔 오쇼셔’ 1() 결정(結晶)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원사(怨辭)임을 잊고 오직 별리(別離) 정서(情緖) 전면(纏綿)함을 깨닫게 뿐이니,

    노래의 작자(作者)야말로

    여래(如來) 수단(數段) 설법(說法) 끝으로 무소설(無所說)이라 () 수보리(須菩提) 대승 불법(大乘佛法)

    진제(眞諦) 영득(領得)하였다 이를 것이다.

     





    아래 분홍색 글상자의 글 내용은

    제가 고교시절 국어시간에  앞에 언급했던 국어선생님께

    국어시간에 양주동 박사의  <가시리 평설(評說)>을 강의 하실때 

    당신의 대학교  지도교수이자  스승 이셨던 양주동박사께서 

    일본학자들 보다 앞서 향가를 해독한 일화를 누차  이야기 하셨었읍니다





    무애 양주동 박사의 항가 해독서 '조선 고가연구' 회고

    无涯 梁柱棟 博士

    양주동 박사가 향가 연구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고귀한 조상의 시가를 해독조차 못하는 아주 못난 후손이 되었을 것이다.

    당대 최고의 권위자인 가나자와 쇼자부로(金澤庄三郞, 1918. 4) 박사,

    아유가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1923. 9) 박사, 소창진평(小倉進平, 오구라 신페이, 1929. 9) 박사 등을 뛰어넘는

     한 차원 높은 학문 세계를 열어 우리의 학문 발전은 물론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이었다.

    훗날 양주동 박사는 향가 연구에 대한 집념과 열정에 대해 이렇게 회고 했다.

    "어려서 시골에서 한학만 공부하다가 일본 동경에 건너가 대학에선 어찌 어찌한 기연으로

    서구문학에 심취하여 불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약관 어린 나이에 평양 숭실 대학에 교수로 갔다.

    그 뒤 10년간 쥐꼬리만한 영미 문학의 지식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문단에선 시와 평론과 수필과 번역을 그적거려 약간의 문명을 날렸다.

    가르치고 글 쓰는 여가엔 거리에 나가 길가에서 노인들 지겟군들과 함께 장기두기로 일과를 삼았었다.

    그러던 중, 나로 하여금 국문학 고전연구에 기연을 지어준 직접적 동기는

    일본인 조선어학자 소창진평(小倉進平)씨의 『향가 및 이두 연구(鄕歌及び吏讀の硏究)』(1929)란 저서를 대함에서였다.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 온 『경성 제국 대학 기요 제1권(京城帝國大學 法文學部 紀要 第一)』이란 부제가 붙은 그 책을 빌려 처음엔 호기심으로, 차차 경이와 감탄의 눈으로 하룻밤 사이에 그것을 통독하고 나서

    나는 참으로 글자 그대로 경탄했고, 한편 비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경성제국대학교수 문학박사 소창진평 저(京城帝國大學 敎授 文學博士 小倉進平 著).

    첫째, 우리 문학의 가장 오랜 유산, 더구나 우리문화 내지 사상의 현존 최고 원류가 되는 이 귀중한 향가의 해독을

     근 천년래 아무도 우리의 손으로 시험치 못하고 타인의 손을 빌었다는 그 민족적 부끄러움이었다.

    둘째, 나는 이 사실을 통하여 한 민족이 다만 총 칼에 의해서만 망함이 아님을 문득 느끼는 동시에

     우리의 문화가 언어와 학문에 있어서까지 완전히 저들에게 빼앗겨 있다는 사실을 통절히 깨달아,

    내가 혁명가가 못되어 총 칼을 들고 저들에게 대들지는 못하나마

    어려서부터 학문과 문자에는 약간의 천분이 있어 맘속 깊이 원도 열도 있는 터이니 그것을 무기로 하여

    그 빼앗긴 문화유산을 학문적으로나마 결사적으로 전취, 탈환해야 하겠다는, 내 딴에 사뭇 비장한 발원과 결의를 했다.

    소창진평씨의 저서를 읽은 다음날 나는 우선 장기판을 패어서 불 때고, 영미 문학서는 잠깐 궤 속에 집어넣어 두고,

    서울로 올라와 한글 고문헌 장서가 여러분을 방문하여 그 귀중한 문헌들을 한두 달 동안의 기한으로 빌었다.

     그 국보급의 장서들을 아낌없이 빌려주던 제가의 후의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예, 가만히 두고 기다려 보십시오. 몇 달 뒤에 우리 문화사상 깜짝 놀랄 일이 생겨나리다!

    내려가서 우선 한 달 동안은 문헌 수집에 골몰하고, 다음은 글자대로 불철주야로 심혈을 경주,

     머리를 싸매고 여러 문헌을 섭렵․연구한 결과 약 반 년 만에

    우선 소창진평씨의 역독의 태반이 오류임과 그것을 깨뜨릴 학적 준비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악전 고투 무리한 심한 공부는 드디어 건강을 상하여

    대번에 극심한 폐렴에 걸려 발열이 며칠 동안 40도 넘어 아주 인사불성, 사람들이 모두 죽는 줄 알았었다.

    아내가 흐느끼고 찾아온 학생들이 모두 우는데, 내가 혼미한 중 문득 후다닥 일어나 부르짖었다.

    하늘이 이 나라 문학을 망치지 않으려는 한, 나는 죽지 않는다! 이만한 혈원이요 자부심이었다.

    천행으로 병은 나았고, 나는 곧 나의 소견을 써서 『청구학총』 제19호에 그것을 발표했다.

    「향가의 해독 특히 <원왕생가>에 취(就)하여」, 1937년 1월. 『국학연구 논고』에 역수.

    청구학총이란 일인 학자,주로  사학자들의 전문지였는데, 그들이 내 글을 권두에 실었다.

    그 뒤 평양 숭실 대학의 직을 사하고 서울로 올라와 빈궁과 문헌의 결핍과 싸우면서 다시 길거(拮据) 수년,

    드디어 『조선 고가연구』를 1942년에 완성, 간행했다. 중간의 노력과 고심은 이루 말할 나위도 없다.

    연구 도중의 잊혀지지 않는 몇 가지 일이 회상된다.

    첫째는 책 빌러 다니던 고심, 둘째는 가난과 유혹과 싸우던 기억.

     그 끝내의 기쁨! 책이 된 뒤에 그것을 나의 무보수 조수들이었던 나의 가족들,

    특히 강제로 할 수 없이 아빠가 시키는 대로 흥미 없는, 성가신, 학자 아버지의 뜻 모를 일에 고역하다가

    욕만 실컨 먹고 울던 어린 아이들, 나의 학자적 체면이 지금에도 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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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 향가(鄕歌) 해독(解讀)ㆍ주석서(註釋書). 

    이 책은 한국 학자에 의해 이루어진 최초의 방대한 향가연구 저서로, 향가 연구의 집대성이다.

    1929년 일인(日人) 학자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의 

    <향가 및 이두의 연구>(경성제국대학 간행)를 낸 지 12년만에 이루어진 것으로, 

    최초의 해독가인 오쿠라 교수의 연구보다 훨씬 보정(補整)의 진경(進境)을 보인 명저로 평가되고 있다.

    <삼국유사>에 실린 14편과 <균여전>에 실린 11편 등 현존하는 25편의 신라 향가를 해독ㆍ주석하고 있는 이 책의 특징은,

     15세기까지 의 한국어의 문헌조사를 철저히 한 점, 또 인명ㆍ지명ㆍ관직명의 풀이를 새롭게 한 점, 

    시가(詩歌)를 시가답게 풀이한 점에 있다.

    그리고 이 저서의 출간에 의해 향가의 시가로서의 면모가 어느 정도 명료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 뒤 향가의 어학적 연구의 진전은 물론, 이 책을 토대로 하거나 선행조건으로 하여

    점차적으로 향가의 문학적인 해석과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책의 학계에 대한 기여는 실로 큰 것이다.

    원명은 <조선고가연구(朝鮮古歌硏究)>였으나, 그 뒤 이 책은 <고가연구(古歌硏究)>란 표제로 증보ㆍ개정판이 이루어졌다.


    - <한국문학대사전>(문원각.1973) -



    【의의】

    <고가연구>의 성공은 그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광범위한 문헌자료의 섭렵 및 왕성한 탐구력에 더하여

    그의 시적 직관까지가 가세하여 성취된 것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원래 어학의 길에 있지 않았던 외국문학도의 소망과 발심에 의하여 그것이 이룩되었다는 점에서는

     예상 밖의 기적이라고 평할만한 면이 있기도 하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향가해독에 새로운 차원을 열었다는 데 있지만, 

    방대한 부피가 시사하듯이 이 저서에서 논의된 내용들은 해독을 위한 논증들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적절한 체계를 세우고 합당한 학술용어를 선택하지 못한 경우들도 있기는 하지만, 

    이 책 안에는 국어의 음운·문법·어휘의 여러 층위에 걸친 많은 사고가 담겨 있고,

     그 중에는 후세의 엄격한 기준에 의한 비판에도 견딜 수 있는 상당한 탁견들이 들어 있기도 한 것이다.

    주어진 언어자료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 생각하고 그것을 문자화해놓았던 것이라 할 수 있어, 

    단순한 향가주석서 이상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주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