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미국의 영토확장시기의 조선("The Green Leaves Of Summer") 본문

뮤즉

미국의 영토확장시기의 조선("The Green Leaves Of Summer")

매루 2019. 3. 23. 07:14




리오 그란데 강





영화, 알라모 / The Alamo.

1960년도 제작 감독 및 주연 / John Wayne

출연 / Richard Widmark, Laurence Harvey

  상영시간 / 167분



우리나라 개봉 1965년





The Green Leaves of Summer : Brothers 4
 



 <The Alamo>의 주제가 "The Green Leaves Of Summer"

OST  : Dimitri Tiomkin





알라모전투와 미국의 영토확장


 


독립을 선언할때(1776년) 동부의 13개주가 영토의 전부였던  미국은 독립전쟁 (1775~1783)의 승리로

13개 주를 합친 것보다 훨씬 넓은 면적의 땅을 영국으로부터 얻어냈습니다.

윗 사진은 독립전쟁후인 1789년 당시의 미국영토로(사진 오른쪽은 독랍선언당시의 13개주)  

지금 미국영토의 삼분의 일에 약간 못 미치고,

멕시코 전체를 포함한 나머지 대부분은 스페인이 차지하고 있었읍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북미 대륙에서 스페인의 영향력이 떨어지기 시작 하면서

 1811년에 멕시코 독립전쟁이 시작되었고, 1817년에는 플로리다에서 세미놀 전쟁이 일어나게되고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할때에  플로리다는 미국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1821년  독립에 성공한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할당시

지금의 텍사스,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네바다 주는 모두 멕시코의 영토 였읍니다

새로 출범한 멕시코의 정부는 멕시코인들이 거의 살지 않았던 텍사스에 이주한 300세대의 미국인(AngloSaxon)들에게

가구당 177에이커의 경작지와 4,428에이커의 목초지 그리고 세금면제 혜택을 주었읍니다

이후 10년 동안 2만 명이 넘는 미국인들이 텍사스에 성공적으로 정착을 하였읍니다

1834년에 멕시코는 산타 안나(Santa Anna)로 불리는 독재자 안토니오 로페즈 장군이 권력을 잡으면서

텍사스에 이주해있던 미국인들에게 세금징수와 토지 문제로 억압과 횡포를 일삼자  

1835년 텍사스의 미국인들이 독립을 선언하면 6개월간의 텍사스 독립전쟁이 벌어집니다

알라모 전투는 텍사스독립전쟁중에 샌안토니오의 알라모에서  200여명의 텍사스의 민병대가

멕시코의 실권자 산타 안나가 직접 지휘한 4,000여명의 토벌대에 맞서 13일 동안 치른 전투 입니다



알라모에서 민병대들의 장렬한 전사 소식이 미국 전역에 전해지자

미국 각처에서 성금과 물자의 지원과 젊은이들이 합류하면서 텍사스 민병대에 전력은 크게 보강되어었고

 알라모 함락 45일만에 San Jacinto에서 멕시코의 군대를 크게 격파하면서

 멕시코 총독이자 사령관인 산타 안나(Santa Anna)를 포로로 잡은후

산타 안나를 석방하는 조건으로 멕시코로부터 텍사스의 독립을 얻어내며 텍사스공화국을 세웁니다

1845년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제임스 포크(James Polk)는 텍사스, 플로리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미국의 주에 편입시키는 작업을 하였고 텍사스는 멕시코로부터 독립을 한지 9년만에 미국연방의 28번째 주로 편입이 됩니다


 

 

텍사스와 플로리다를 편입한 1845년의 미국 영토(분홍색으로 표시된 부분)






텍사스 공화국이 미국의 주(州)로 편입되던 1845년대에 조선 에서는



 조선 23대 왕 순조(재위기간 1800~1834), 24대 헌종(재위기간 1834~1849), 25대 철종(재위기간 1849~1863) 

조선의 후기였던 이시대에는 왕비의 친척인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두 외척간의 세도정치 기간으로

나라살림의 바탕이되는 세금제도였던 전정(田政), 군정(軍政), 환정(還政)등의 세금제도가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와 학정으로 삼정(三政)문란 이 만연 하였고

가뭄등의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까지 겹쳐 민란이 빈번 하였으며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조정은 통상을 요구하는 이양선의 출몰에 쇄국 정책으로 일관하였고

이시기에 외국인신부들과 김대건신부 그리고 천주교신자들을  처형하는 천주교박해가 있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