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Schumann의 Traumerei와 구소련의 붕괴 본문

뮤즉

Schumann의 Traumerei와 구소련의 붕괴

매루 2019. 1. 13. 15:04




고르바초프 취임전의 소비에트 연방(소련 1922~1991)과 소련공산당은 박정희의 유신시대 처럼 

반소적(反蘇的)인 문화,예술분야에 검열과 금지정책을 펴왔었읍니다


※박정희 유신헌법은 국민개인의 거의 모든 자유권적 기본권을 축소 하였는데

그중에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에 대하여 허가나 검열을 금지한다>는 기존헌법상의 명문을 삭제 하였읍니다


재건(再建), 재편(再編)의 뜻을 가진  러시아어인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는

1985년에 소비에트연방의 서기장으로 취임한 고르바초프가 펼친 개혁정책으로

이 정책(페레스트로이카)이 소비에트연방 공산당의 보수파들의 방해와 저항에 부닥칠것을 대비하여

열림, 개방의 뜻을 가진 러시아어인 <글라스노스트> 라는 개방정책을 병행을 하며

그동안 금지시 되었던 문화예술분야를 공개 하였읍니다






동영상

   1986년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렸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Vladimir Horowitz)의 ‘61년 만의 귀향 연주회’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던 소련(우크라이나)출신의 피아니스트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Vladimir Horowitz : 1903년 ~ 1989년)는

세상 떠나기 3년전(1986년)에 모스크바에서 귀향 공연을 합니다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 정책에 의해 펼쳐진 이연주회는

1949년 이래 중국의 비공산권(對非共産圈) 여러 나라에 대한 배타적 정책 이었던 죽의장막을 연  

1971년 닉슨의 핑퐁외교에 견줄만한 획기적인 사건으로

공연 끝무렵에  그가 앵콜곡으로 슈만의 트로메라이('Schumann''Traumerei')를  연주할 때에

모든 청중이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모습이 소련과 전세계에 퍼지며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토이카 정책추진에 힘이 실리고 철의장막이 열리며

구소련붕괴와 지구촌 탈냉전시대 종말의 서막이 되었읍니다




당시 <타임>지의 표지인물로 소개된 피아니스트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Triumph in Moscow" 라는 제목도 인상적 입니다


※승리, 이기다, 성공, 업적 이라는 뜻의 Triumph 는

고대 로마 공화정시대에 승전 장군에게 베풀어진 행진의식으로

전쟁에서 이긴 장군들에게는 최고의 영예였다고 합니다 






Robert Schumann의 Traumerei


"꿈"이라는 뜻의 독일어인 트로메라이(Traumerei)

독일 출신의 음악가 슈만(RobertSchumann1810~1856)이 자신의 어린시절을 그리워하며 만든곡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낭만파 음악의 대가인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

어렸을 때부터 책에 묻혀 살았다고 할 정도로 일생 동안 음악만큼이나 문학에도 심취하여

 14세 때 아버지가 출판하던 책에 원고를 발표 하기도 했고 

일곱 살 때 피아노를 시작했으며 얼마 후 작곡에도 손을 댔지만

부모의 영향으로 '라이프치히'대학의 법과에 입학했습니다

18세의 슈만은 라이프치히에서 유명한 피아노 선생이었던 프리드리히 비크에게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우는데

그곳에서 같이 피아노를 배우는 한 여학생과 사랑에 빠져 약혼까지 했었읍니다

슈만은 그의나이 24세(1834년)때부터 <새음악 잡지>라는 이름의 잡지를 정기적으로 펴내는 일을 시작하며

뒷 날 이 잡지에 무명의 청년 음악가 '브람스'를

'베토벤의 위대한 독일 음악 전통을 이을 대가'로 소개를 합니다 

이시기에 슈만은 자신의 피아노 선생 비크의 딸인 클라라 (당시 14세) 와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이 평생동안 작곡한 250여곡들중의 절반이 이시기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장인인 비크의 결사적인 반대(슈만을 미성년자 유괴죄로 고발하는등)와 나이차(9살)를 극복하고 

1840년에 슈만과 클라라는 결혼식을 올리며 부부가 됩니다

결혼당시18세였던  클라라는 그때에 이미 장래가 촉망되는 피아니스트였기에

그때 빈의 한 악기사는 클라라의 결혼축하선물로 피아노를 한 대 주었는데

이 피아노는 클라라가 내내 쓰다가, 그녀가 죽은 후에는 브람스가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슈만과 클라라는 둘사이에 5아이를 두며 더없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지만  


그의 나이 45살때에 극심한 우울증과 환청으로 인하여 라인 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기도 하기도했고

2년 후 46세라는 젊은 나이에 '엔데니히 정신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는데 그때 그의 나이 46세 였읍니다





〈슈만과 클라라〉



슈만과의 결혼 1년전의  클라라 비크

 오스트리아 화가 안드레아스 스타우브의 석판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