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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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섬친구들 1

2018 송년회

매루 2018. 12. 15. 17:27





어제(12월 14일)는 용현동 옛버스터미널 부근의 한 중국음식점에서

낙섬일사회(인천용현초등학교 14회 졸업생들의 모임)의 2018년도 송년모임이 있었읍니다




회원들의 대다수가 한국전쟁때 북(주로 황해도)에서 피난을 내려온 실향민들의 자녀들로

당시 인천의 끄트머리 바닷가였던 용현동의 낙섬 근처의 염전주변에서 너나없이 함께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낸 친구들 입니다




저는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학익초등학교와 용현초등학교를 번갈아가며

전학을(학익초 입학~2학년초 용현초 전학~3학년 2학기 학익초~5학년 2학기 용현초)다니다가

5학년 2학기때 용현초등학교로 전학을 온후 6학년 내내 중학교 진학을 위한 과외등의 입시준비 때문에

친구들을 만나거나 사귈 시간이 없이 졸업을 하였고

중학교 2학년때에 저희집은 구월동으로  이사를 하였기 때문에  거의 모든 낙섬일사회 친구들과는 아예 낯선사이가 되어버렸읍니다




초등학교를 졸업(1967년)한지 35년이 지난 2002년도에

 만수동에서 저희부부가 운영을 하고던 숯불갈비식당에 73 동기회가 발행한 신문이 배달 됩니다

그때 배달되온 73 동기회(1973년도에 인천에 있었던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의 연합모임)의 신문 속에서

저의 기억속에 묻혀져있었던 용현초등학교 출신 친구들의 이름 몇몇이 눈에 띄었고

저와 낙섬일사회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 되었읍니다 




그당시 낙섬일사회 회장을 맡고 있었던 덕관이(안경낀 남자)는 저를 낙섬일사회 친구들에게 소개를 시켜주었었읍니다

친구를 좋아하는 덕관이(홍덕관 관세사무소)는 모임이 끝난후 새벽3시경까지 치러진 2차비용을 부담 하였읍니다

덕관이 부부는 지난 여름에 제가 농사지은 옥수수를 맛보고는  지금도 옥수수 잠꼬대를 한다며 고마워 합니다  



서울에서 살고있는 성한이와 용덕이

대머리 총각 이었던 성한이는 55살에 첫사랑 여인과 매우 늦은 결혼식을 올렸읍니다

성한이 그리고 제가 해남 아가씨라 부르던 성한이의 아내는 그떄(결혼식때)까지 처녀총각 신분 이었읍니다

혜화동의 혜화성당에서 신앙생활과 함께 성당활동도 열성적인 성한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저와함께 소문난 빨갱이로 알려진 사이 입니다


용현동 주인선철롯가에 있었던 소금공장 큰아들인 용덕이(파란색 윗옷)는 중고등학교때 저와 같은 교회에 다녔었고

역시 같은교회에 다녔던 저의 최고(最古)절친인 성대와 함께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로

지금은 동대문시장에서 펜시점을 운영하며  찾아오는 친구들에게 밥 잘사주는 친구로 알려져 있읍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후 51년만에 처음으로 동창회에 모습을 보인 김미래(빨간색 윗옷차림)...

낙섬일사회에 처음 나오는 여인옆에는 언제나 창용이의 서성거림이 있읍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것처럼 창용이는 미래에게 고백을 합니다

"내가 초등학교 졸업하고 너를 얼마나 보고싶어했는줄 알아?  네가 내 첫사랑인거 넌 모르고 있었지 ...바보야...."라고


두뇌회전이 빠르지않은이들은 창용이의 우스개소리를  뒤늦게 이해하고 늦은 웃음을 터뜨립니다

타고난 입심과 함께 프로수준의 악기연주자인(섹소폰,기타,건반등) 창용이는

언젠가 저에게 고백을 합니다

"일후야! 나는 네가 앓고있는 암이 옮는(전염)건줄 알고 그동안 너를 피해 왔었어....

이제 우리 앞으로 함께 음악하며 친하게 그리고  즐겁게 지내자..."라고요


교회권사인 창용이는 돈잘벌고 술잘먹고 즐겁게 놀기 잘하면서

좋은일(불우이웃 돕기나, 자선공연, 기부)을 참 많이하는 친구 입니다

저희부부가 민수동에서 식당을 할적에 창용이, 세우, 병규는 거의 매일 저희집에서 늦은밤까지 술잔을 기울였었읍니다

며칠전 오랫만에 함께 모였던 우리넷의 그날 모임의 마지막 모습 입니다 

창용이는 병규가 오줌으로 남의집 담장에 금을 가게 했다며 저에게 파출소 전화번호를 묻습니다





굴집 아들 성돈이(서있는 이)를 이야기하려면 입지전적 이라는 표현이 필요 합니다

맨손으로 일군 자신의 사업체를 동종업계(깨스배관제품 제조) 국내 상위 3위안에 끌어올렸고

그의 사업장(김포공장, 제천공장, 베트남공장)에 친구들이 찾아갈때는 물론이고 

친구들에게 음양 또는 직간접적으로 통큰 선행을 베풀어 왔읍니다


용현동에 있었던 대성목재공장의 철롯길쪽 동네에는

성돈이 어머니께서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굴을 까셨는데 그 굴껍데기들이 모여 커다란 언덕이 생겼고 

그시절 용현초등학교출신들 사이에서는 성돈네가 살던 동네가<굴고개> 또는 <굴동네>로 불리웠었읍니다

 



전북 정읍에서 역시 동종(특수 안전유리)업계 매출 국내 상위 5%안에 드는 업체의 실세인 호영이(두손을 모으고있는 여인)는

저에게는 친누나나 이모같은 여인으로 제아내와도 친자매처럼 가까운 사이 입니다 




낙섬일사회 안에서 저와 첫사랑 사이로 숱한 이야기꺼리들을 생산해낸 옥수(휘젓고있는 여인) 입니다




여희(양주병을 들고 서있는 여인) 역시 제게는 빼놓을수없는 각별한 여인 입니다

저나 제아내에게 안부전화를 제일 많이 해오는 여인으로

정읍의 호영이처럼 저에게는 누나나 이모 같은 여인이고 제아내와는 친자매같은 사이 입니다




오늘날 저희부부의 영흥섬생활의 계기를 만들어준  신일이(검정색 모자를 쓴이)는

영흥섬에서 저희부부와 이웃사이 이기도 합니다




지난 한해동안 낙섬일사회의 정기모임(매 짝숫달 14닝)에 한번도 빠지지않고

개근을 한 친구들에게는 임원진에서 선물을 안겨 줍니다

낙섬일사회의 남자회원들은 자신들이 받은 상품을 옆에있는 여자회원에게 선물을 해온 전통이 있읍니다

뜻밖의 횡재는  입꼬리를 귀에 걸게 합니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호경이(흰색 윗옷차림)는 아주 오래전에 제주도에 사업장(제과점)을 열었고

지금은 상당한 부를 축적한 부자아줌마로  낙섬친구들의 제주도여행때 많은 펀의와 도움을 주며 반겨줍니다





여희(양주병을 들고 서있는 여인) 역시 제게는 빼놓을수없는 각별한 여인 입니다

저나 제아내에게 안부전화를 제일 많이 해오는 여인으로

정읍의 호영이처럼 저에게는 누나나 이모 같은 여인이고 제아내와는 친자매같은 사이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