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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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먼저다

함포고복(含哺鼓腹)

매루 2017. 7. 10. 16:20







국밥집 여주인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쓴 손편지.

                 지난달 29일 오전 11시50분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 옆에 자리잡은 왱이콩나물국밥집에 6명의 청년들이 들어섰다.

그 중 한 명이 주인에게 물었다. “이 국밥집이 대통령님께서 블로그에 사연을 올려 놓은 집 맞나요?” 

주인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은 드디어 찾아 냈다는 듯 각자 자리를 꿰차고 앉아 국밥을 시켰다.

청년들 뿐만 아니었다. 가끔씩 대통령과 국밥집 사연을 묻는 손님들이 적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연유로 자신의 블로그에 이 국밥집 얘기를 써 놓았을까.

 문 대통령은 지난 2015년 2월 자신의 블로그인 ‘문재인의 희망편지’ 12번째 사연으로 ‘전북 전주의 국밥집 아주머니께’를 올렸다.

문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 선거 낙선자 신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블로그에 전주의 콩나물국밥집 주인이 전해준 따뜻한 온정에 대해 감동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적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블로그에 전주의 콩나물국밥집 주인이 전해준 따뜻한 온정에 대해 감동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적었다. 




“어제 저에게는 따스한 국밥의 온기와 함께 평생 간직해야 할 사자성어가 하나 생겼습니다.

국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주인 아주머니는 ‘차안에서 꼭 보시라’며 편지봉투를 하나 건네 주셨죠. 깜짝 놀랐습니다.

그날 올리신 첫 매상이 고스란히 들어 있더군요.

정성들여 쓰신 짧은 편지 한통도 몇번이나 읽었습니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담겨 있었습니다.” 


국밥집 주인 아주머니가 쓴 편지에는 ‘함포고복(含哺鼓腹)’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는 “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니 사는게 너무 즐거워서 나랏님 이름까지 잊고 살았다는군요.

기원합니다. 허기지고 헛헛한 당신에게 쌀 밥 한그릇의 온기를 전합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문 대통령은 블로그 말미에 “돌아보면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 사람사는 세상이 있었다”면서

 “함포고복 네 글자를 가슴에 품고 아주머니께서 전해주신 국밥의 온기와 정성을 국민들께 드리겠다”고 적었다. 

                 전주 왱이콩나물국밥집 주인 유대성씨.

전주 왱이콩나물국밥집 주인 유대성씨.


이후 문 대통령은 올해 대통령에 당선되기 이전까지 전주에 올 때마다 이 콩나물 국밥집에 들러 한 끼를 때우며 우정을 나눴다.

국밥집 주인은 문 대통령이 참여정부시절 격무로 이가 상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대봉시 한 보따리를 차에 실어주며 온정을 전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이 국밥집을 다녀간 때는 지난 5월 대선투표 3일전이었다. 

국밥집 주인인 유대성씨(55)는 “매상과 편지를 드린 것은 그 분이 순례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고,

때마침 자영업이 어려운 시기기도 해 희망을 갖자는 마음에서였다”면서

 “함포고복은 나에게 나랏님과 지도층을 향한 기본적인 요구였다”고 전했다. 


유씨는 “운명은 그 분을 순례길로 이끌었고 우리는 참 뻔뻔하게도 그분에게 순례길을 요구한 것 같다”면서

 “지금은 뵐 수 없어 서운하지만 그 분이 그 길에서 내려온 어느 날 다시 국밥 한 그릇 대접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용근 기자 yk21@kyunghyang.com

 2017.07.03 15:57:31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


[박현모의 고전에서 희망읽기 2007.7]

 1423년 봄 강원도의 대기근은 세종 리더십의 첫 번째 실험대였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태종이 상왕으로서 “국가의 중대사는 직접 듣고 결정”해 주었다. 
 세종은 집현전에서 인재를 기르거나 예제(禮制)를 정비하는 등 주로 시급하지 않은 일만 맡았다. 
 하지만 태종이 재위4년(1422년) 5월에 사망하자 세종 스스로가 모든 국정을 책임져야만 했다. 

  1423년 봄 강원도의 대기근은 실로 혹독했다. 
 수년간 흉년이 계속된 데다가 그해에는 특히 장마가 심해서 보리 이삭이 전부 썩고 오곡의 종자까지 휩쓸려 가버렸다. 
 급히 교체되어 간 강원감사 황희의 보고에 따르면, 
 토지의 58%가 황폐화된 가운데 인구의 27%가 여기저기를 떠돌며 구걸을 하고 있었다. 
 산중 고을의 백성들은 나무껍질을 벗겨 먹거나, 흙을 파서 떡과 죽을 만들어 먹어야 했다.
 이렇게 되자 국경을 넘어 도망가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왕을 원망하는 소리까지 나왔다. 
 강원도 고성의 이각(伊覺)이란 사람은
“이 임금 때문에 흉년이 들어 살기가 심히 어렵다. 
 내가 임금이 된다면 반드시 풍년이 들 것”이라는 소리를 해 처벌[大言罪] 받기도 했다.


.< “밥은 백성의 하늘이다.”>“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民惟邦本 食爲民天].” 
 국가재정의 어려움을 들어 구휼을 반대하는 신하들에게 세종이 힘주어 강조하던 말이었다.
  이 말은 곧 밥을 굶게 하는 국왕은 임금 될 자격이 없으며, 모든 정사보다 민생이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만약 한 백성이라도 굶어 죽은 자가 있다면, 
 감사나 수령이 모두 왕명을 위반한 것으로써 죄를 논할 것이라”는 세종의 거듭된 강조는 그런 생각의 연장이었다. 
 이러한 세종의 민생우선의 정책 덕분에 1423년 당시 강원도에는 
 “고향을 떠나서 떠도는 백성이 비록 많았으나, 굶주려 죽은 사람은 적었다.”
  세종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는 여기서부터 쌓이기 시작하였다.


<출판저널> 2007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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