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내고장 인천출신 윤희정의 lost love 본문
사진 출처 청주고 53회 동창회 카페
본명이 김명희인 윤희정은 1953년 인천 송현동에서 월남하여 전자사업을 했던 부친 김병덕과 모친 서인선의 2남4녀중 둘째로 태어났다.
서울대 법대 3학년때 사법시험에 합격한 오빠 김병준과 동생들은 하나같이 공부 잘하는 우등생들이었다.
윤희정은 인천 송림초등학교때부터 글쓰기와 예능에 재능을 보였지만 공부가 싫었던 집안의 청개구리였다.
인성여중고시절에는 문학에 심취하여 교우지 <인성>의 편집을 맡으며 시쓰기에 몰두했다.
교내백일장은 물론 각종 백일장에서 장원을 세번이나 했을만큼 인정을 받았다.
또 중학시절부터 홀로 익힌 기타와 노래솜씨도 뛰어나 인천 YMCA에서 레크레이션송을 가르치기도 했다.
고3담임선생이었던 SBS인기드라마 <은실이>의 작가 이금림은 윤희정의 노래에 반해 수업시작전에 항상 노래를 부르게 했다.
인성여고졸업때까지 문예부장과 함께 음악부장을 계속 맡았던 것은 이처럼 출중한 문학적 음악적 재능탓이었다.
이당시 가슴을 적셔주던 음악은 아레사 프랭클린의 소울 블루스와 마할리아 잭슨의 흑인영가였다.
노래로 돌파구를 찾은 윤희정은 지구레코드사 주최의 아마추어 노래자랑대회에 동생 김명혜와 함께 출전,
우승하면서 점점더 음악에 빠져들어갔다.
음반사의 주선으로 참가했던 71년 시민회관의 제1회 KBS배 쟁탈 전국노래자랑대회.
한해동안 1,500명의 가수지망생들이 참여해 자웅을 겨룬 신인가수등용문이었다.
11월 마지막주에 기성곡인 펄시스터즈의 <별이 빛나는 밤에>로 나섰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노래만은 누구에게도 지기싫었던 윤희정.
"11월대회에서 낙방한건 2년간 쓰던 3,000원짜리 쇠줄기타가 탈을 내 코드가 엉망인 채로 노래를 했기 때문이었어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1만5,000원짜리 고급기타를 사서 작사작곡을 직접해 다시 나갔어요"라는 당시 신문인터뷰기사는
그녀의 승부근성을 읽게해준다.
자작곡 <눈감으면>을 부르며 12월 첫대회에 재도전, 우승과 함께 시원시원한 음색의 노래라는 찬사까지 얻어냈다.
연말결선에서는 대학가에서 주인없이 불리어지던 참신한 포크곡 <세노야 세노야>를 부르며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옮겨온 글 (갈쿠리와 함께 하는 음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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