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아버지(자전거 그리고 오토바이) 본문
유관순 열사께서 아우내 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시기 2년전(1917년)에
황해도 황주의 사과 과수원(청용 과수원)에서 태어나신 저희 아버지 께서는
부모님(저의 할마어머지,할머니)의 각별한 사랑속에 서당에 다니시며 그시대의 여느 총각들 처럼 일찍 결혼을 하셨읍니다
한국전쟁때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 오셨다가 휴전이되어 삼팔선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갈수 없게되자
지금으로부터 60년전인 1954년에 당시 26세의 황해도 장연출신의 제어머니와 재혼을 하셨읍니다
당시 제 아버지의 연세는 38세 이셨읍니다
늦은 나이에 얻으신 아들인 저에게 기울여주신 아버지의 사랑은 각별 하셨읍니다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이 책가방대신 보자기로 책을 싸가지고 학교에 다니던 1961년도에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게되자
아버지 께서는 어깨에 메고 다닐수있는 고급책가방을 제게 사주셨는가하면
그해 봄소풍 때에는 저는 물론 그시대의 어린이들이 듣거나 보지도 못했던 바나나를 소풍가방에 넣어 주시기도 하셨읍니다
그러한 아버지와 저와의 많은 추억들 중에서 자전거에 대한 추억도 빼놓을수 없읍니다
온동네에 한대나 있을까 말까한 귀한 세발 자전거를 제게 사주시고는
수봉공원 자락에 있던 독정리(독쟁이) 비탈길로 저를 데려 가서서 자전거를 태워 주셨고
걸어서 1시간이 더 걸리던 아침 등교길에는 저를 천주교 공동묘지(지금의 인하대학교 후문 근처로서 전체 등교길의 절반거리))까지
태워다 주시곤 하였읍니다.당시 제 아버지 께서는 제가 다니던 학익초등학교 앞의 흥한방직 이라는 회사에 근무를 하셨었는데
아버지 께서는 저를 내려 주신후 지금의 동서우유입구를 지난후 학익삼거리를 돌아 흥방에 도착을 하셨고
아버지께서 자전거에 내려주신 천주교공동묘지 부근에서 저는 다른 학생들과
화교들의 호박,조를 심으며 집단으로 살고 있었던 인하대학교 뒷산을 넘어 학익초등학교에 다다르곤 했었읍니다
제가 성인이 된후 장난 삼아 조차도 자동차의 운전석에 앉아 본적이 없었기에
당연히 자동차운전 면허도 없고 지금 영흥도 에서는 자전거로 생활을 하고 있읍니다
그 자전거 마저도 지난 강추위때 타이어가 못쓰게 되어 섬생활이 무척 불편 하던차에
주말마다 요양원의 아버지를 찾아오는 여동생 부부가 어제(12월 27일) 아버지에게 저의 사정을 말씀 드렸고
아버지 께서는 오토바이 한대 사라시며 100만원을 내어 놓으셨읍니다
98세 되신 아버지께 60된 아들이 100만원 용돈 받는 아들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고맙고 재미있는 요즈음의 우리집 입니다
지난 몇주동안 날씨가 고약(강추위, 눈, 강풍등)하였던 관계로 아버지 께서는 저희집엘 오시지 못하였었읍니다
아버지와 여동생 부부가 맛있게 점심식사를 하십니다
저처럼 감기에 시달리고있는 제아내의 표정이 고단해 보입니다
봄이오면
수원시립합창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