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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半島

설날

매루 2014. 1. 28. 11:27

 

 

 

 

근대국가에 들어 우리나라에서는 한 때 음력설[舊正]과 양력설[新正]로 두 개의 설이 있었다.

음력설은 전통적인 명절, 곧 설날을 의미하며, 양력설은 현재 일상력으로 사용하는 태양력에 의한 설이다.

그러나 전통명절은 역시 설날이다.

구정이나 신정이란 용어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설날이 오늘날과 같이 본명을 찾기까지는 우리의 역사만큼이나 수난을 겪었다.

1896년 1월 1일(음력으로는 1895년 11월 17일)에 태양력이 수용되고도 우리의 전통명절인 설날은 이어졌지만

일제강점기가 되면서부터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에 의하여 설날과 같은 세시명절마저 억압했다.

일본 명절인 천장절(天長節)·명치절(明治節) 등을 국경일로 정하여 갖가지 행사에 한국인을 참가시켰다.

광복 후 우리 스스로의 정부가 들어섰지만 설에 대해 이중과세라는 낭비성만을 강조했다.

하지만 국가가 아무리 신정을 강요해도 일반인들은 설날을 명절로 여겼다.

그래서 설날은 급기야 민속의 날이라는 지극히 어색하고 궁색한 이름이 붙여지고

1989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본명인 ‘설날’을 찾게 되었다.

이때 언론매체에서는 70~80년 만에 설날을 찾았다며 떠들썩했다.

 

오늘날 설날 무렵이면 추석과 함께 ‘민족대이동’이 화두가 되고 있다.

명절 연휴에 고향을 찾는 인파가 물결을 이루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어른’들이 자녀를 찾는 역류 현상도 일고 있지만 아직은 고향을 찾는 인구가 훨씬 많다.

그래서 오늘날 설은 전통문화를 보존한다는 측면과 만남을 갖는 절대적인 시간이 된다는 측면에서 대단히 소중하다.
설날이면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설날을 전후하여 성묘하는 세시풍속은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민속놀이를 비롯하여 갖가지 세시풍속은 퇴색되거나 단절되었다.

그래서 설의 세시풍속은 언론매체에 소개되는 것이 일종의 ‘세시풍속화’했을 정도이다.

근래 민속박물관과 민속촌 등 유관기관에서는 민속놀이판을 벌이고 있으며, 이를 찾는 가족들도 날로 늘고 있다.

떡국을 끓일 가래떡을 기계로 빼거나 상품으로 만들어진 것을 사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아직 떡국을 명절음식으로 하는 세시풍속이 전승되고 있다.

떡을 먹지 않아서 밥으로 차례를 지낸다는 가정도 있으나 설날과 떡국이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으리라 본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설이 다가오면 가래떡을 뽑기 위하여 통금이 해제되는 새벽4시에 달려가

방앗간주위에 줄을 서있었고

차례가 되어 방앗간 안으로 들어서면 자욱한 김속에 피댓줄 돌아가는소리가 들렸었읍니다

 

 

 

 

       

   

까치설날이 음력12/31일인 것은

여러 친척들이 설날 전에 모여서 음식을 만들 때

까치들이 음식냄새를 맡고 와서 울어대는데서 까치의 설날이라 하고 

그리고 그 다음날이 우리들이 차례를 지내고

오손도손 모여서 얘기하고 음식을 나누니까 우리의 설이라고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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