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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半島

불타는 崇禮門

매루 2014. 2. 11. 07:55

 

 

 

 

 

 

 

 

 

 

 

 

 

 

 

내 마음의 숭례문 

박노해

 

 

설날 새 마음으로 고향을 다녀온 날

남대문이 불탔다

 

아무 말도없이 아무 요구도 없이

때론 위엄있게 때론 쓸쓸하게

그저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충분하던

내마음의 숭례문

 

그가 분신하듯 타오르고 있었다

600년 지켜온 이 땅의 자존심이

우리들 인간에 대한 예의의 약속이

시커멓게 무너지며 절규하고 있었다

 

아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건가

설날아침 나는 무슨 말들을 피워냈던가

 

주식과 펀드와 뉴타운과 경제성장의 단어들이

인간에 대한 예의가 밥 머겨 주냐고 소리칠때

그래도 건강하고 정직하고 우애있고 자기답게

함께 나누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고

진정 소중한것은 지켜가야 하지 않겠냐고

두눈 맑게 뜨고 말없이 바라보던 숭례문

 

저 텅 빈 슬픔의 자리에서

태워야 할 것들을 스스로 불태우며

불의 침묵으로 다시 일어서는 내 마음의 숭례문

 

 

2008, 2, 11

 

 

 

 

 

 

 

 

 

 

 

 

2007년 12월에 치러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경제가 어려우니 과거(전과 14범)가 나쁘더라도 이명박밖에 대통령감이 없다며

화려한 전과기록을 보유하고있던 이명박씨를 대통령으로 뽑습니다 

그리고는  박노해 시인의 표현처럼
설날 가족 또는 친지들과 그리고 친구들 또는 동료들과

주식과 펀드와 뉴타운과 경제성장의 이야기꽃을 피웠고 

인간에 대한 예의가 밥 먹여 주냐며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을때

일제의 만행과  6,25전쟁의 와중에도 꿋꿋이 그자리에 서있었던 숭례문..

그 숭례문이 앞으로 이땅에서 일어날 <MB의 난(亂)> 에 의해 자행될 분탕질과

4대강 파헤치기등의 한반도 유린을  예견 이라도 한듯.....

 불길한 조짐을 일러주기라도 하려는듯.......

 

 

 

 

 

 

 

다시 우뚝 선 숭례문

 
다시 우뚝 선 숭례문
지난 4일 오후 막바지 복원공사가 한창인 숭례문 기와 위에 흰 눈이 소복이 쌓여 있다.
2013.2.4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seephoto@yna.co.kr

 

 

245억원의 예산을 들인 숭례문 복구 작업은 현재 95% 가까이 공정이 진행됐으며,

오는 4월  모습을  선보이기로 되어 있읍니다

 

2013년 2월 11일 작성글

 

 

 

 

 

 

 

 2014년 2월5일  ‘직위해제’ 부른 최종덕 국장 책 ‘숭례문…’ 무슨 내용이

 

 

 숭례문복구단 부단장과 단장으로 숭례문 복구작업을 지휘했던 최종덕(55) 문화재청 문화재정책국장이

5일 직위해제(<한겨레> 6일치 29면)된 데에는 최근 그가 내놓은

단행본 <숭례문 세우기-숭례문복구단장 5년의 현장 기록>(돌베개·사진)이 문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최 국장의 직위해제가 국가공무원법의 ‘직무수행 능력이 부족하거나 근무성적이 극히 나쁜 자’라는 규정에 해당되었다고 밝혔다.

 직위해제에 적용된 법 규정이 합당한지 현재로는 알 수 없지만,

단청 훼손을 계기로 숭례문 부실 복구 논란이 불거진 뒤 감사원의 감사를 받고 있는 와중에

민감한 내용을 담은 책을 발간해 분란을 불렀기 때문이라고 한 정부 관계자는 말했다.

무엇이 ‘민감한’ 내용이었을까?

 

■ 통나무에서 제재목으로 바뀌어-철물과 기와도 잡음 

최 국장의 책에 따르면 숭례문 복구 과정에는 수많은 문제점이 가득했다.

우선 신응수 대목장 관련 내용이 눈에 띈다. 신 대목장은 전통연장을 사용해 공사를 하겠다고 밝혀 대목장으로 선정됐다.

하지만 공사 진행중이던 2011년 12월8일부터 이듬해 1월초까지 한달 이상 전통기법은 품이 많이 드니

공사비를 올려주지 않으면 목공사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해 공사가 멈췄다.

최 국장은 그와 담판을 벌여 무조건 공사를 재개하였지만 이후 들어온 나무는 통나무가 아니라 제재목을 들여와 썼고,

처마선을 결정하는 평고대도 제재소에서 기계로 켜 가져와 사용했다고 밝혔다.

 

철물 제작도 전통방식에 따라 관련 장인까지 선정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철물을 제작하는 데 실패해 경복궁에 보관하던 조선시대 경회루 철물로 해결했다고 털어놨다.

 

기와 역시 문제가 불거졌다.

전통기와장인 ㅎ제와장이 전통 방식으로 만든 수제 기와를 쓴다고 밝히자

공장식 기계 기와를 생산하는 업체들이 문화재 기능인 장인 5명 이름으로 항의서를 냈다.

ㅎ씨가 “일본식 소성기법으로 만들어온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최 국장은 업계의 지분 다툼이었다고 이들을 비판했다.

 

■ 현판 놓고 문화재청장과 고성-청와대는 덧집 디자인 바꾸라 요청 

그가 직위해제된 것은 책에 상급자들에 대한 내용을 넣은 점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판 글씨 복원을 두고 청장과 고성이 오간 것 등을 책에서 밝히고 있다.

화재 현장에서 현판을 구해냈지만 이 현판이 실제로는 1953년, 1963년 보수과정에서 글씨가 변형된 사실이 발견됐고,

원래의 탁본이 양녕대군의 사당인 지덕사에 보관된 사실이 밝혀졌다.

원형 복원하겠다는 복구단의 보고를 받은 당시 이건무 청장은 기존 현판을 그대로 써야 한다며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잘못된 것도 역사적 실체이므로 좋든 싫든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이 청장의 뜻이었다고 한다.

 

책에는 청와대와 관련된 부분도 언급되어 있다.

 복구 현장을 덮는 가설 덧집 디자인에 대해서다.

공사 편의를 위해 덧집을 설치했는데, 주요20개국 정상회의(G20)를 열흘 앞두고 ‘G20 서울정상회의 준비단’에서 덧집 디자인을 요청해왔다.

각국 정상들이 지나갈 서울 한복판에 공사판이 벌어져 보기 싫으니 환경미화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닷새 만에 급조했다고 털어놨다.

 

■ 기계로 일하고 손작업 인건비 청구, 현장 대장간은 ‘쇼’였다

  책에서는 ‘문화재수리표준품셈’의 문제도 폭로하고 있다.

1983~1986년 창경궁 복원공사에서부터 문화재 수리에 전통연장이 아닌 현대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1991년~2011년 경복궁 복원공사에서는 전동동구와 기계장비로 나무를 다듬었다.

40년 전부터 전동공구를 사용하였는데도 문화재수리표준품셈은 전통기준에 의한 일력품으로 공사비를 산정했다는 것이다.

업자들이 기계를 사용해 손쉽게 일하면서 인력으로 힘들게 일한 것으로 돈을 받아간 셈이다.

 

이밖에 소나무 기증의사를 밝힌 사람이 166명이었지만 실제 기증자는 10명에 지나지 않았다거나,

 전통 철물을 위해 공사현장에 만든 숭례문 대장간은 보여주기용 쇼였다는 등의 일화가 나온다.

최 전 국장은 “문제가 있었다면 있었던대로 이번 복구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가치가 있다”며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책 발간이 공교롭게 숭례문 수사와 시기가 겹쳤을뿐”이라고 <한겨레>에 말했다.

 

임종업 기자(2014.02.06 19:47  수정 : 2014.02.06 22:07)

 

2014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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