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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半島

박근혜는 메르켈이 될 수 없는가

매루 2013. 9. 27. 09:19

 

 

 

 

 

 

 

 봉황은 오동나무 아래 깃들고 삼천년 만에 한번 열린다는 대나무 열매인 죽실(竹實)을 먹고 산다고 전합니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 내가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무심한 일편명월이 빈가지에 걸렷세라."는

옛 시가 떠오르는 안타까운 요즈음 입니다

 

 

 

집권당은 실종되고 야당은 내팽개쳐지고 국회는 온전치 못하고 내각은 활력을 잃고 대통령의 약속은 깨지고 서민들은 한숨짓고 있다.

오직 그가 있는 청와대만 우뚝 서 있다.

집권세력과 그 밖의 세상이 통하지 못하고 집권세력 내부에서도 서로 흐르지 못하는 ‘닫힌 통치의 성(城)’이 구축된 것이다.

이 성에서는 정치도 관료적 통치의 일부이다.

외교관을 정무수석으로, 전직 의원을 그 밑의 비서관으로 두는 방식은 그가 정치를 어떻게 이해하는지 잘 드러낸다.

정치가 대통령의 뜻을 집행하는 과정이라고 믿는다면, 재외공관에서 본국의 훈령을 받아 활동하는 대사 출신이 적임자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 성에서 겨우 장군과 공안검사가 통제하는 권력기관만이 약간의 신임을 받으며 남북 정상 회의록 폭로와 같은 자율성을 일부 누릴 뿐,

나머지 참모와 각료들은 ‘윗분’의 뜻을 ‘아래’로 전달하는 단순 기능을 반복하느라 허덕이고 있다.

대통령이 창의성을 발휘하라고 다그친다 해도 눈치 빠른 각료들은 절대 남의 눈에 띄는 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 대통령 어록을 뒤져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것이 창의적이지는 않지만 안전한 방법임을 잘 알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권한의 위임과 분산 대신 1인 중심의 통치를 만드는 일에 상당한 위험과 비용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

참을성이 필요한 설득과 타협, 동의 과정을 위해 쓸데없이 시간낭비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닫힌 통치, 정치의 관료화, 여의도 앵무새 새누리당의 정치적 행방불명, 생각 능력을 거세당한 참모와 각료들의 의기소침….

 이게 바로 박근혜 정치이며 또한 ‘위기의 정치’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3자회담 충돌은 예고된 것이었다.

이런 정치는 위기를 예방할 수 없고 위기가 닥쳐도 해결할 수 없으며 위기 이후를 수습할 수도 없다.

위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이게 위기의 본질이다. 그 위기가 시작됐다.

보통 권력투쟁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규칙이 있다.

‘적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다면 제거하라.’

마키아벨리는 사람들이 조그만 상처에는 복수를 하지만, 정작 큰 상처에는 감히 복수를 못하기 때문에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인가, 박 대통령은 회담이 끝나고 돌아선 야당을 향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며 깊은 적의를 담아 확인사살을 했다.

그러나 야당은 상처를 받을 뿐 죽지 않는다. 야당은 곧 살아나 복수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에게 원칙은 좋은 정치적 자산이었다.

가벼운 말들이 떠도는 정치판에서 누구도 그가 던진 말의 무게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 밖에서 남에게 원칙을 따지는 것과 정부 안에서 원칙을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국가를 책임지면서 실수와 잘못 없이, 야당의 반대와 공세 없이 일하기는 어렵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자신의 정부와 정책에 대해 설득하고 해명하고 사과도 해야 한다.

그것을 국정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국가를 책임진 자의 운명이다.

그런데 어느새 그의 원칙에서 느껴지던 비수와 같은 날카로운 힘은 투박한 우악스러움으로 바뀌었다.

그는 최근 현안들에 대해 친절하고 설득력 있는 설명을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감정 섞인 주장과 핑계뿐이었다. 권력은 수다스러울 필요없다는 오만함의 표시인가?

 

박 대통령의 짧은 집권기에 드리운 이 그림자들이 혹시 몸에 밴 아버지 정치철학의 발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 정치철학으로 환원할 수 없는 경제민주화, 복지와 같은 시대정신을 받아들였기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 살부(殺父)정신으로 과거에 사로잡힌 자신을 구출해야 한다.

요즘 박 대통령이 야당과 싸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과, 아니 자신의 과거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한국 보수들의 우상인 맥아더 장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필리핀 주둔 사령관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부관이 전 사령관들에 의해 성공을 거둔 방법과 작전을 담은 책을 그에게 주었다.

맥아더는 그 책이 몇 권짜리인지 물었다. 부관은 여섯 권이라고 답했다. 그

러자 맥아더가 말했다. “여섯 권 모두 불태워 버려, 하나도 남김없이.”

 지금 여기에 던져진 문제를 붙잡고,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풀어가야 한다.

여느 대통령보다 더 잘해낼 수 있는 조건과 자원을 갖고 있는 박 대통령이 겨우 이 정도라는 건 믿기 어렵다.

여기서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직도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좋아하고 친분도 있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야당을 발로 차 광장으로 쫓는 대신 야당의 의제를 수용하는 방법으로 야당을 무력화했다.

인내, 공감, 소통으로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최근 3선에도 성공했다.

그는 유로존 위기 때 독일의 대응속도에 대해 불만이 나오자 “위기를 한 방에 날려버릴 바주카포는 없다”면서

“모든 것은 남을 설득하는 힘에 달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메르켈이 되어서는 안되는가?


<2013년 9월 25일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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