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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이야기

가장 오래된 벗 성대

매루 2013. 7. 20. 06:20

 

 

 

 

 

 

 

 

초등학교를 4번이나 전학을 다니다가  5학년2학기때 마지막으로 전학을 온 용현초등학교,,,

학기초에 전학을 하면 새로운 친구들과 반편성이 새로 되어 전학생인줄을 모르는데

학기중에 전학을 하면 당분간 짖궂은 친구들의 텃세와 귀챦고 힘든 싸움을 했어야 했읍니다

그런데 여름방학중에 이루어진 5학년때의 전학에서는 그런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읍니다

당시 학교앞에있는 고아원에 아버지께서 취임을 하셨고 고아원원장(친구들이 알기로는)집 아들인 저는 고아들 덕분에

예전의 전학초기처럼 힘든 적응기간이 생략되었고 오히려 대우를 받을 정도 였읍니다

저와같은반에는 학익초등학교에서 이곳으로 전학을온 저 말고 신흥초등학교에서 전학을 왔다는

초롱초롱 빛나는 새까만 눈동자의 첫인상이 지금도 생생한 김성대라는 소년도 있었읍니다

어린나이였음에도 그소년 에게서는 귀티를 느낄수 있었으며 이따금씩 경상도 억양의 사투리를

사용하는 그가 신비스러운 매력으로 어린 저의 마음에 자리를 잡기 시작 하였읍니다

그중에는 같은시기에 전학을 온 타인 이라는 동병상련의 동질감도 있었겠지요

성대의 고향은 경상남도 진해 입니다

성대의 집안은 조상대대로 진해에서 부와 명예를 누려왔고

성대의 아버님께서는 해군장교로서 이승만대통령의 신임과 총애를 받았었읍니다

60년대 중반이었던 그시절 성대의 집에는 제가 태어나서 처음보는 고급앨범들이 수십권 있었는데

그앨범 속에는 성대의 부모님들이 경무대의 각종 행사와 연회때 이승만대통령부부와 함께찍은

사진들로 가득차 있었읍니다

4,19의거와 5,16 쿠테타 당시 쿠테타 세력에 동참하지 않았던 이유로 성대네 집안은  몰락하기 시작했고

 성대네 가족들은 당시로서는 인천의 가장 변두리였던 용현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읍니다

저희가 살던 고아원이있는 산 한쪽에 움막을 면하는 허름한 판잣집에 살게된 성대는

훗날 저와함께 동인천중학교에 입학을 하여 편도 1시간이 걸리는 등하교길 길동무가 되었읍니다

성대의 아버지께서는 해운회사에 출근을 하셨고 성대의 어머니께서는 일본어 강사 이셨는데

박정희대통령정권때 한일외교의 주역들중 상당수가 성대 어머니께 통역 또는 일본어 자문을 구하기도했을 정도로 

성대 어머니가 우리나라 일본어 강사의 효시라고 저는 생각 합니다

몰락한 성대네 집에는 거의매일 빚장이들이 상주하고 있었읍니다

그래도 성대부모님들께서는 성대의형님(현재 한국해양지질 연구소장)과 성대 형제에게 학업에 전념할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셨고

성대네 집에 찾아오는 저희친구들을 극진하게 대해 주셨읍니다

성대생일 이라고 친구들을 초대해서 생일파티를 열어 주신다던가

성대와 그의 형님이  부모님과 다른방을 쓰는 것 조차도 그당시 저희에게는 놀라움 이었으니까요

더욱 신기한것은 성대가 학교에 결석을 해도 야단을 치질 않는것 이었읍니다

그때문에 덩달아 저도 자주 등교길에 옆으로 새버리는 불량학생이 되었기도 했읍니다

그때쯤 성대는 바둑에 입문하여 불과 몇달만에 각종대회에 나가 입상을 하기 시작했고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바둑공부에 전념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훗날 검정고시를 치른후 경희대학교 관광경영학과에 입학을 합니다

그당시 그의집은 제물포고등학교 뒷편의 기상대쪽에 있었읍니다

동인천역에서 버스를 내려 그의집엘 가려면 축현국민학교앞길을 올라 제고철조망담장을 우측으로 끼고

공원길을 걸어야 했는데 이코스는 장발단속을 피해 다니던 저희들에게 최악의 코스이기도 했읍니다

몸을 숨길수 있다거나 피해 도망갈수있는 골목이 없는 외길 이었기 때문 이지요

어느 겨울날 성대의집을 방문 했더니 그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낄낄거리며 웃고 있었읍니다

제물포고등학교 입구의 소방파출소.....

 좌측은 홍예문방면길이고 우측은 전동방면이고  정면이 공원으로 올라가는 언덕길 이었는데

응달인 이길은 겨우내 얼어있는길이라 무척 미끄러웠읍니다

그길위에 눈이 덮이면 초행인 사람들은 20여M 이상을 본의 아니게 넘어져 미끄러져 내려올수밖에 없었읍니다

게중에는 넘어져 다치는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그가 웃고있던 이유는 그길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면 자동으로 약방앞에서 멈추게 되어있다는것 이었읍니다

실제로 소방파출소 맞은편 제고 입구에는 약방이 있었읍니다

그 약국의 김수경 이라는 인일여고 출신의 따님이 저희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 이셨는데

저희 사촌누나와 이화여대 동기동창 이었던 덕분에 고등학교 제음악점수평가는 항상 "수" 였읍니다

군대를 갖다온후 성대는 역삼동의 신축호텔인 남서울호텔에 취직을 하였읍니다

당시 인천이 연고지였던 삼미슈퍼스타즈 야구단의 서울 숙소이기도했던 남서울 호텔은

86,88 두대회를 앞두고 일기 시작한 관광붐에 맞추어 무척 활기를 띠었었읍니다

경희대 호텔경영학과를 나온 성대는 엉뚱하게 그곳에서 벨보이 일을 하고 있었읍니다

대한민국에 처음온 관광객들은 대한민국의 화폐단위에 생소했기 때문에

벨보이에게 건네주는 팁 이라는 봉사료의 수준을 몰랐던것을 이용하여

성대는 자신이 입고있는 흰 와이셔츠 윗주머니에 배추색이 선명한 만원권 지폐를 살짝 보이게 넣는다거나

바지 벨트에 만원권을 꾸겨서 꽃고 다녔답니다

당시 비교적 많은 월급을 받던 선박회사 직원들의 월급이 20만원이 채 안되었었는데

성대는 근무하는날 팁으로만 하루 10여만원 이상을 벌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그렇게 벌은 돈으로 성대부모님께서 시달려오던 30년빚을 모두 청산을 해드린 성대 였읍니다

술자리에서 "어떻게 된집이 빚을 갚아도 갚아도 끝이 없더라"라며 맘고생을 토로 하기도 했던 성대는

어느날 제 사무실에 초록색 군인 작업복 차림으로 나타났읍니다

"호텔 아저씨들은 예비군훈련복도 얼룩무늬가 아니고 세련되었네"라며 인사겸 반농담을 그에게 건네자

"나 호텔 그만두고 소방 공무원 되었다"는것 이었읍니다

우리부부 결혼식 끝나고 남서울호텔에서 첫날밤을 지내더날 앞으로 우리부부 결혼기념일은

호텔에서 자신이 책임지고 최고로 챙겨주겠다고 약속하더니 웬 소방관 이람,,,,,,,,,,

어느덧 정년이 몇년 남지않은 소방관이된 그 이지만 당시 그의 선택에 저는 또한번 크게 놀랐었읍니다

성대는 부모님의 오래된 빚을 청산하고 그의형님의 학업을 돕기위해 결혼을 무척 늦게 했읍니다

그의 아내는 그가 호텔에 근무할때 알고 지내던 여행사 직원 이었는데

호텔에 근무하면서 여자보는 눈이 높아졌었는지 성대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여인 입니다

그의 큰아들 은영이가 얼마전에 군에 입대를 했다면서 무덤덤한 표정을 짓던 성대,,,,

초등학교 5학년때 만나서 쌓여진 그와의 수많은 사연들과 이야기들속에 항상 밝았던 그의 표정도

자식 군입대 이야기가 나오니까 굳어지더군요

 

2011년 3월 26일 작성글

 

 

 

그와함께 보냈던 어린시절의 용현동 낙섬 바닷가가 멀리 보이고 

 

 

 

군에 입대하기전 여름날 성대도 함께했던 친구들과의 강촌캠핑때 민박집의 장독대 옆에서 보았던 참나리꽃이 활짝 피기 시작한 오늘

 

 

저의 가장 오래된 벗 성대가

 

 

 

광희와 함께

 

 

하수오농장엘 찾아 왔읍니다

 

 

 

 

 

 

하수오농장 한켠 밭에 익어가는 옥수수처럼 우리들의 나눌 이야기들이 무척 많아서

 

 

 제아내와 참이도 옆에서 귀기울여 우리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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