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조성민의 죽음 본문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거인)팀 에이스시절의 조성민
14년전 조성민씨와 최진실씨의 결혼설이 장안의 화제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예계와 스포츠계의 최고스타커플탄생 이라고 이야기 할적에
저는 대한민국이 국보급 야구투수 한명을 잃게 된다고 안타까워 했었읍니다
저의 우려는 그들 부부의 어린 두아이만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진 너무도 비극적인 현실로 확대진행 되었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진실씨를 두둔하고 동정하는 분위기이고, 망자들에 대하여 논하기도 어렵던중
어제 인터넷의 한카페에서 제가 공감하는 글이 보이기에 옮겨왔읍니다
성경(고린도 전서)의 사랑장에 나오는 귀절들을 떠올려 보면서 사랑의 힘에 대하여 새삼 생각해 봅니다
'조성민의 죽음' 이 검색어 1위에 올라있다. 이미 고인이 된 '최진실'이 그 다음 2위이다
많은 걸 유추하며 잠시 상념에 빠진다.
난 많은 시간의 방송국생활을 하면서 최진실을 면전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주로 MBC 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내가 실물을 보았건 아니건 간에 최진실은 한국 최고의 아이콘이자 스타였다.
그렇게 잘나가던 최진실과 잘생긴 최고의 야구스타 조성민이 결혼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에
과연 이들 부부가 잘 살수 있을까 ?? ..최진실이 행복할 수 있을까? 란 의문을 품었던 기억이 있다.
최진실은 이미지로서 부풀려진 존재이고
조성민은 야구 실력과 실물이란 팩트로서 존재하던 야구스타라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까
최진실이 품어서 보듬기에 조성민의 미모와 존재가 더 커 보였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 라는 CF 대사 한 마디로 스타의 길을 시작한 최진실,
실제에서는 '여자하기 나름'으로 한 남자를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서로 상대적이겠지만)
최진실과 조성민
2000년 결혼, 2004년 이혼, 2008년 자살 ...이렇게 기사에 나온다.
조성민의 일본 야구 생활에서 최진실의 변수는 어떤 것이었을까?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는 야구스타의 내조.. 안정적이지 못했던 최진실의 성장배경
두 사람의 결혼 후 조성민의 야구 인생은 내리막을 걸었다,
조성민 주변에 여자들이 많다는 가쉽이 들렸다. 충분히 그럴만 하게 보였다.
이후 최진실은 이혼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
최진실 측에서 조성민을 비난하는 소리들이 들렸다.
사랑이 증오로 바뀌는 듯 하였다.
이혼 후에 최진실은 이미지 변신을 하였다. 삶의 고통과 함께하는 주부 역할로 드라마는 성공했지만
정작 본인의 이미지에서 행복의 기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최진실의 죽음 이후
동생 최진영이 TV에 출연하여 조성민을 애둘러 비난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이 불편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이면에는 어린 자식 문제, 재산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었다
언론이란 게 또한 그렇다. 고인과 그 주변에 대해 진정 도움이 될만한 기사는 찾을 수 없었다.
갈등과 위기를 조장하고 확대 재 생산하기에 바쁜 거 같았다.
대중의 집단 무의식은 덩달아 잔인했다.
일방적으로 최진실은 선, 조성민은 악으로 규정된다는 사실에 난 반감이 느껴졌다.
이후, 남동생의 자살
그리고 오늘, 조성민.
모두 저 세상에서는 화목하기를 바래본다
<2013, 1, 6 무비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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