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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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비젼 시절의 어머니모습
어머니를 생각 했읍니다
돌아가신지 14년이 되었지만 설과 한가위때 말고는 어머니의 묘를 찾아뵙지 못하는 게으른 제자신을 늘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러면서도 문득 떠오르면 콧날이 찡해지며 눈물이 글썽여지는 그리운 어머니 인데 지난 한달여 기간동안 더더욱 그러하였읍니다
재발한 암을 지난 초여름에 수술을 마치고 5개월여동안 힘든 항암치료까지 마쳤읍니다
하지만 곧바로 치러진 각종검사결과는 수술부위(왼쪽무릅뒤)에 종양이 남아 있다고 나왔는데
문제는 종양이 종아리와 발로 내려가는 혈관과 신경에 얽혀있는것 이었읍니다
다리절단 동의서에 승낙싸인을 한후 치러졌던 지난번 수술은 다행히 무사히 마쳤는데 다시 그부위에서 종양이 재발 한것 이었읍니다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까 앞이 막막하고 이루 표현할수없는 불안과 공포 후회 그리고 때론 분노심까지 일더군요
어쨌든 수술날짜를 잡고나니 일분일초의 시간들이 너무도 아까웠고 빨리도 지나더군요
양쪽다리가 성할때 해놓아야 할일이 한없이 많았기 때문 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몸이 바쁠때뿐이고 밤이 되어 몸이 한가해지면 다시 수심에 잠기게 되더군요
그때마다 가장 그리운이가 어머니 였읍니다
수술을 마치고 마취가 풀리면서 제의지보다 빠르게 제 왼손은 왼다리를 더듬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발가락을 움직여 보았읍니다
왼다리가 온전한 상태로 자기자리에 있었읍니다 꿈만 같았읍니다
마음을 진정한후 애써 이런 생각을 했읍니다 인간은 모름지기 마려울때와 싸고난후의 마음이 달라선 안된다고요
거기에 해당되는 수많은것들중에 어머니를 생각 했읍니다 퇴원후 집에 돌아와 컴퓨터앞에 앉고 월드비젼을 검색 했읍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어머니께서는 월드비젼에 출근을 하시기 시작을 하셨읍니다
1960년 미국과 한국에서 한국의 전쟁고아 또는 부랑아들을 돕기위해 설립된 월드비젼은
전쟁고아들로 구성된 선명회합창단과 함께 이땅에 사랑을 실천하는 기관으로 우리에게는 선명회(宣明會)로 알려져 있었지요
선명회라는 이름은 한때 통일교산하 리틀엔젤스합창단이 설립되면서 교주인 문선명과 이름이 동일하여 일반인들이 혼돈을 빚기도 하여
지금은 월드비젼한국으로 이름이 바뀌었읍니다 애초부터 통일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던것 이지요
월드비젼에 근무하시던 어머니께서는 이따금 색안경 이야기를 하시곤 했읍니다
다같이 어렵게 살았던 그시절에도 기부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었는데
대부분의 기부자들이 사전연락없이 또는 이름을 밝히길 거절 하며 돈이나 물건을 놓고가며
어떤이는 심지어 기부금이 들어잇는 봉투나 기부물건들을 몰래 놓고가기도 했답니다
그중에 저희 어머니께서 가장 존경하는 기부자들은 고아들과 스킨십을 하는 방문객들 이었다고 합니다
목욕을 오랜동안못해 어찌보면 불결해보이는 또는 피부병등을 앓고있는 어린이들을 끌어안고 웃고 놀아주는 기부자들 이었다고 합니다
SKIN +SHIP : 피부의 상호접촉에 의한 애정의 교류
더 기가 막히는것은 자기가 기부한 돈 또는 물건들이 정말 고아들에게 전달되느냐며 의심을 하는 보잘것없는 위선자들이 셈이지요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한 기관 이지만 세계각지에서 종교는 물론 사회 문화 성별에 대한
어떠한 차별도없이 일하는 전문구호개발기관인 월드비젼,,,,,,,,,
월드비젼 사이트 구석마다 제어릴적 월드비젼 사무실에서 일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것들로인해 나의 마음도 아프게 하소서"
월드비젼의 정신이자 제 어머니께서 제게 말없이 보여주시던 정신 이었읍니다
월드비젼 태동의 계기(625전쟁)가 되었고 월드비젼의 도움을 받앗던 우리나라는
월드비젼의 도움을 받았었거나 받고있는 세계여러나라중에서 월드비젼을통해 다른나라를 돕고있는 유일한 나라 라는군요
월드비젼 사이트의 <후원금인상 동의하기>에 클릭후 어머니얼굴과 온전한 제왼다리를 떠올리고 바라보았읍니다
2010년 12월 4일 어진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