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바람은 부드러워지고 곳곳에서 꽃이 핀다.
꽃이 봄에만 피는 건 아니지만, 추운 겨울 뒤 만나는 온기 덕분인지 봄날의 꽃은 설렘에 더 닿아 있다.
‘무언의 말’이라는 꽃을 내밀며 꽃말에 기대어 마음을 전하는 사람들 사이, 꽃은 ‘은유하는 생명’으로 피고 진다.
개화와 낙화의 시간을 반복하며 꽃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다.
삶의 풍파에 시달린 자의 마음을 푸는 길은 오직 자연에 다가가는 것뿐이라고 이야기하는
화가 강요배의 그림 속에서 꽃은 자연의 순리와 공명하는 존재다.
겨울과 봄을 잇는 동백이 꽃비 되어 내리는 화면 가득 은근한 공기와 바람의 질감이 고요하다.
시간이 멈춘 듯 조용한 꽃송이는 공기를 떠도는 영혼의 발자국처럼 붉은 흔적으로 흐릿하다.
<꽃비> 앞에서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초봄의 공기를 호흡해 본다.
사랑하는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아내의 무덤가에 피어났다 하여 동백의 꽃말은 ‘기다림’ ‘진실한 사랑’ ‘고결한 사랑’이란다.
열매를 많이 맺는 덕분에 다산을 기원할 때 등장한다.
동백처럼 오래 살고, 동백처럼 그 푸르름 변함없이 영화로우라고 혼례식의 초례상에도 놓는다.
동백은 부부간의 굳은 약속을 대신한다.
신성과 번영을 상징하는 길상의 꽃은 삼가고 조심하며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는 ‘신중함’의 메시지도 전한다.
미처 시들기 전에 꽃송이가 통째로 툭 떨어지는 모습에서 충신의 절개를 보는 이도 있다.
그렇게 떨어지는 까닭에 흔히 있을 수 없는 불행하고 불길한 사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제 고인이 된 최고령 위안부 희생자 이순덕 할머니를 ‘동백꽃 할머니’라 부른 것은
일본군의 만행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꿋꿋하게 법정 투쟁을 이어온 할머니의 모습이
‘추운 겨울에도 지지 않는 고고한 동백꽃’ 같았기 때문이다.
계절 따라 꽃은 피고 지지만, 우리 곁을 떠난 꽃 같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꽃말 속에 새겨져 마음의 가지를 따라 멈춤 없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