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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慶運宮)의 정문 인화문(仁化門)

매루 2024. 2. 22. 13:38

 

 

인화문(仁化門)은 경운궁(慶運宮 현 덕수궁)의 정문이었었음

인화(仁化)는  ‘어진(仁) 덕을 베풀어 교화(化)한다’이며

다른 궁궐의 정문들과 마찬가지로 ‘화(化)’자 돌림을 썼음

임진왜란 당시  임시행궁

고종은 아관파천후 경복궁이나 창덕궁이 아닌 경운궁으로 환궁후

이곳에서 외국 외교관들을 소견하고 명성황후 국장때 이곳에서 영결을 하하는등

황궁의 정문 이었음

 

인화문(仁化門)

인화문 현판

인화문이 헐린 후 현판은 한동안 창경궁 명정전 화랑에  걸려있었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중화문(왼쪽), 대안문(가운데), 인화문 헐린 흔적(오른쪽).
오른쪽에 담장이 끊긴 채 빈 터로 남아있는 곳이 인화문이 있던 자리이다.

 

 

인화문은 지은 지 불과 6년도 채 안 지난 1902년 경에 헐림

경운궁에 번듯한 정전(중화전)을 지으려했지만 기존의 궁역으로는 비좁아서 남쪽으로 확장시키려 했는데

바로 인화문이 그 권역에 있었기 때문에 철거당했다.

인화문이 사라진 이후 정식 정문은 대안문으로 바뀌었다.

철거 이후 인화문 터 바로 뒤에 새 정전 중화전의 정문 중화문이 들어섬

 

 

창경궁 명정전 회랑에 걸려있는 인화문(왼쪽)과 대안문(오른쪽) 현판

인화문이 헐린 후 현판은 한동안 창경궁 명정전 회랑에 걸려있었다가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