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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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나들이

매루 2024. 2. 3. 13:10
 
 
꼽사리 끼다

‘남이 하는 일에 곁다리로 끼다’ 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노름을 할 때 판돈을 대는 것을 ‘살 댄다’라고 한다. 패가 좋은 것이 나올 때에는 살을 댄 데다가 또 더해서 살을 대는 경우가 있는데, 살을 댔는데 거기다 또 살을 대니까 ‘곱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남들이 하는 일에 껴 얹혀서 하는 것을 ‘곱살이 끼다’라고 하게 되었다. 더불어 ‘남이 하는 데에 끼어서 어떤 일을 쉽게 하거나 이득을 취하려는 것'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곱살'에서 유래되었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남이 노는 판에 거저 끼어드는 일'을 뜻하는 단어로 '꼽사리'가  등재되어 있기 때문에 '꼽사리'가 올바른 표기이다.
 
 
 
바가지를 긁다

“오늘 늦게 들어가면 우리 마누라가 또 바가지 긁을 것 같다.”
본뜻은 옛날에 콜레라가 돌 때 전염병 귀신을 쫓는다고 바가지를 득득 문질러서 시끄러운 소리를 냈는데, 여기에서 유래하여 듣기 싫을 정도로 귀찮게 나무라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고 한다. 생활 속에서는 흔히 아내가 잔소리를 하거나 불평을 늘어놓을 때 쓰이고 있다.
 
 

1. 안성맞춤

“그 옷은 너에게 안성맞춤이다”에서 ‘안성맞춤’은 ‘안성’과 ‘맞춤’이라는 단어가 결합된 것이다. ‘안성’은 경기도에 있는 지명 ‘安城(안성)’이며, ‘맞춤’은 ‘맞추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예전의 ‘안성’은 대구, 전주 지역과 더불어 큰 장(場)이 서던 상업의 요충지였다. 안성 장에는 삼남(三南)에서 몰려드는 온갖 물산(物産)이 가득해, 서울의 장보다 질 좋은 물건들이 더 많았다고 한다.

안성 장에서 팔리는 질 좋은 물건에는 다른 지역에서 들어온 것도 있었고, 이 지역에서 직접 제작한 것도 있었다. ‘안성’을 대표하는 것이 맞춤 유기(鍮器)였다. ‘유기’를 만들던 곳이 안성만은 아니었지만 안성의 ‘유기’는 튼튼하고 질 좋기로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안성’의 ‘유기’는 장에 내다 팔기 위해 대량으로 만드는 ‘장내기 유기’와 주문에 의해 만드는 ‘맞춤 유기’의 두 종류가 있었다. ‘안성맞춤’은 바로 ‘맞춤 유기’와 관련해서 생긴 말이다. 보통의 집안에서는 장날에 살 수 있는 ‘장내기 유기’를 사서 썼지만, 행세깨나 하는 집안에서는 직접 안성 유기점에 주문해서 ‘맞춤 유기’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장내기 유기’도 품질이 우수한데, 직접 맞춘 유기는 얼마나 품질이 뛰어났겠는가? 안성에 직접 주문하여 만든 유기가 주문자의 마음에 꼭 들 정도로 아주 훌륭했기 때문에 ‘안성 맞춤 유기’라고 하면 ‘아주 품질이 좋은 유기’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안성’ 하면 ‘유기’가 연상되므로 굳이 ‘안성 맞춤 유기’라 하지 않고 ‘유기’를 생략한 채 ‘안성 맞춤’이라고만 해도 ‘안성 맞춤 유기’와 같은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안성 맞춤’이라는 표현은 어느 시기부터인지는 몰라도 한 단어처럼 굳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유기’와는 관계없이 ‘안성맞춤’은 아주 잘 만든 ‘고품질의 물건’이라는 구체적 의미에서 ‘물건이 좋아 마음에 딱 들어맞음’ 또는 ‘경우나 상황에 잘 어울림’이라는 추상적 의미로까지 발전하였다.

2. 동가홍상(同價紅裳: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녹의홍상(綠衣紅裳:녹색치마에 다홍치마)은 과거 시집가기 전의 처녀가 입었던 옷 색깔에 근거를 두고 있고, 상징적으로는 ‘처녀’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홍상(紅裳)'의 반대말인 '청상(靑孀)'은 '젊은 과부'를 일컫는 말이고, '청상(靑裳)'으로 다른 한자를 쓸 때는 '기생'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라는 말은 '같은 값이면 과부나 유부녀가 아닌 처녀가 좋다'는 뜻으로, '같은 값이면 예쁘고 좋은 물건을 선택한다' 는 의미가 담긴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1. 황소

‘황소’라 할 때의 ‘황’을 ‘누렇다[黃]’는 뜻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의 ‘황’은 ‘누렇다’는 뜻이 아니라 ‘크다’라는 뜻을 가진 ‘한’에서 나온 말이다. '한(大) 소(牛)'에서 나온 말로 ‘큰소’를 의미한다. ’큰길‘을 ’한(大) 길(路)‘로, 황새는 큰새라는 '한(大) 새(鳥)'로 쓰는 구조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검은 소이든 흰 소이든 간에 덩치가 큰 숫소를 모두 황소라고 부르며, ‘저기 흰 황소가 지나간다’라든가, ‘옆집에 검은 황소가 있다’ 등의 표현도 가능한 것이다.

 

2. 잘나가다가 삼천포(三千浦)로 빠지다

‘삼천포’는 경상남도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다. 기후가 온화하고 해안 경치가 빼어날 뿐만 아니라 먹을거리가 풍부해 그 어느 지역보다 살기 좋은 고장이다. 그런데 ‘삼천포’는 1995년 5월 행정구역 개편 때 사천군(泗川郡)과 합쳐져 ‘사천시’로 바뀌면서 그 이름이 사라졌다. 그래서 행정명칭 상 ‘삼천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삼천포(三千浦)’에 느닷없이 ‘빠지다’가 붙어 ‘삼천포’라는 지명의 이미지에 큰 손상을 주게 되었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졌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어떤 목적지를 가려다가 의도하지 않게 삼천포로 잘못 들어섰다는 뜻을 담고 있으니, ‘삼천포’ 사람들에게 별로 유쾌한 표현은 아니다. 이 표현이 언제부터 쓰였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몇 가지 유래설이 있다.

(1) 어떤 장사꾼이 장사가 잘되는 진주로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삼천포로 가게 됐다.
(2) 과거 부산發 진주行 열차는 개양역에서 삼천포행 객차를 분리하여 운행했다. 이때는 반드시 안내 방송으로 진주행 손님과 삼천포행 손님이 객차를 갈아탈 것을 알렸다. 그런데 간혹 객차를 잘못 옮겨 탄 손님이 진주가 아닌 삼천포로 잘못 가게 되는 일이 종종 있었다.
(3) 부산발 순천행 열차는 진주에서 분리하여 삼천포로도 운행을 하였다. 순천으로 가는 손님이 객차를 분리할 때 삼천포행 객차로 잘못 옮겨 타 삼천포까지 가게 되었다.
(4) 진주로 가는 길과 삼천포로 가는 갈림길에서 진주로 가려던 사람이 삼천포로 가는 길로 잘못 접어들어 결국 삼천포까지 가게 되었다.

여러 유래설을 종합해 보면, 공통적으로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길을 잘못 들다’ ‘이야기가 곁길로 빠지다’ ‘어떤 일을 하는 도중에 엉뚱하게 다른 일을 하다’ 등과 같이 나쁜 결과가 나왔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주로 쓰인다. 그러니 삼천포 주민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이 표현보다는 “잘 나가다가 샛길로 빠지다”라는 표현으로 바꾸어 쓰는 것이 좋을 듯하다.

 

 


1. 레지

젊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단어일지 모르지만, 연세가 드신 분들은 ‘다방’ 이라는 장소와 거기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레지’ 라는 단어를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이 ‘레지’에 대해서 영어의 ‘lady’ 가 ‘레지’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것으로 영어의 register(등록하다)에서 온 말이다. ‘레지스터’가 줄여진 ‘레지’는 일본사람들이 ‘카운터’ 또는 ‘카운터에서 계산하는 사람’으로 사용하는 단어이다. 그 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그대로 다방에서 요금을 계산하는 사람 또는 요금을 계산하는 곳이라는 의미로 쓰이게 된다. 과거 다방에서 주로 카운터에서 요금을 계산하는 사람이 주로 여자이다 보니, 다방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까지도 ‘레지’라는 말로 확대해서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2. 돌팔이

‘돌팔이’의 사전적 의미는 ‘전문 지식이나 기술 없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사람’이다. ‘돌팔이’는 ‘돌다’ 와 ‘팔다’ 의 합성어이다. 그리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지는 않는데 ‘돌팔이’가 쓰인 예로 ‘돌팔이 글방’이란 것이 있다. 어린 아이들을 모아 놓고 자격도 별로 없는 사람이 가르치는 글방을 말하며, 본래 ‘돈팔이 글방’이었다고 한다. ‘돈팔이’란 학문이나 기술을 본분으로 하지 않고 오로지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을 지칭한다. 이런 연유에서 ‘돌팔이’는 가짜나 엉터리를 뜻하는 말로 그 의미가 확대되어 사용되게 되었다. 돌팔이 무당, 돌팔이 의사 등의 말이 여기서 비롯한 것이다.

3. 백일장(白日場)

‘한글날 기념 백일장’ 이라는 말을 학창시절 자주 들은 기억이 있다. 보통 글짓기대회를 할 때 쓰이는 말인데, 왜 ‘백일장’이라고 할까? 글짓기와 어떤 관계가 있는 말일까?

조선시대에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해 각 지방 유생들을 모아 시문(詩文)짓기를 겨루던 행사가 있었다. 뜻 맞는 사람들끼리 달밤에 모여 친목을 도모하고 시재(詩才)를 겨루어보는 망월장(望月場:밤에 달을 바라보며 열림)과 그와는 대조적으로 대낮에 백일하(白日下: 밝은 태양 아래)에 시재를 겨루는 백일장(白日場)의 두 종류가 있었다. 옛날 관리의 등용문이던 과거 시험이 후자(後者)인 백일하에 이루어지던 백일장(白日場)이었으므로, 오늘날 전문 직업작가가 아닌 일반인이나 학생들이 모여 글짓기 대회로 시재(詩才)를 겨루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1. 개거품? 게거품?

“미친 듯이 화를 내며 개거품을 물고 따지다.” 등과 같이 ‘개거품’은 생활 속에서 꽤 쓰이는 말이다. ‘개망나니’ ‘개떡’ ‘개살구’ 처럼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나 좋지 않은 물건을 지칭할 때  ‘개’가 들어가는 단어가 많다 보니, ‘개거품’을 바른말로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이 몹시 괴롭거나 흥분했을 때 입에서 나오는 거품 같은 침”을 일컫는 말은 ‘개거품’이 아니라 ‘게거품’이 바른말이다.

우리의 밥상에도 자주 등장하는 ‘게’는 위험에 처하거나 주변 환경이 바뀌면 입에서 뽀글뽀글 거품을 뿜어낸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게거품(을) 물다’ 이다. 하지만 ‘개’가 입가에 잔뜩 침을 흘리며 으르렁거리는 경우도 있으니 ‘개거품’ 도 말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때도 ‘개거품’은 쓸 수 없다. 물론 “개가 입에 거품을 물고 으르렁거렸다”로는 쓸 수 있지만, 이를 “개가 입에 개거품을 물고 으르렁거렸다”가 아닌 ‘게거품’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이다.

덧붙여, ‘게’와 관련해서 잘못 쓰기 쉬운 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게껍질’이다. 게장을 좋아하는 사람이 “게껍질에 밥을 비벼먹으면 정말 맛있다.”라고 한다면 이는 틀린 표현이다. ‘껍질’은 “딱딱하지 않은 물체의 겉을 싸고 있는 질긴 물질의 켜”를 뜻하는 말로, 사과껍질ㆍ귤껍질 등에서 쓸 수 있다. ‘게’의 등짝처럼 딱딱한 겉부분은 ‘껍질’이 아니라, 조개껍데기, 달걀 껍데기처럼 ‘껍데기’라고 해야 옳다. 그러면 의미상으로 게껍데기가 맞는 표현이 되어야 하지만, ‘게’의 경우는 딱딱한 등짝을 가리키는 말로 ‘게딱지’로 쓰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게딱지’가 “게의 등딱지”로 풀이돼 있다. 여기서 ‘딱지’는 “게나 거북 따위의 몸을 싸고 있는 단단한 껍데기”를 뜻하는 말이다.

2. 이판사판(理判事判)

조선시대 사찰에는 이판승과 사판승의 구별이 있었다. 이판(理判)이란 참선하고 경전을 강론하기도 하고 수행하는 스님이다. 속칭 공부승(工夫僧)이라고도 한다. 사판(事判)은 생산에 종사하고 절의 업무를 꾸려나가고 사무행정을 해나가는 스님들이다. 속칭 산림승(山林僧)이라고도 한다. 이판과 사판은 그 어느 한쪽이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상호 관계를 갖고 있다. 이판승이 없다면 부처님의 지혜로운 말씀이 실천되지 않을 것이고, 사판승이 없으면 가람이 존속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조선이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국교로 세우면서 스님은 성 안에 드나드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이 때문에 조선에서 스님이 된다는 것은 이판이건 사판이건 천한 신분계급을 벗어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막다른 마지막 선택이고, 이판이나 사판은 그 자체로 '끝장'을 의미하는 말로 전이되고 말았다. ‘최악의 상황이나 처지가 되는 것’, '막다른 궁지' 또는 '끝장'을 뜻하고 뾰족한 묘안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조선뿐만 아니라 일제와 8·15광복 후의 건국 초기에도 불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서로 분열 반목케 하여 이판사판은 더욱 부정적 이미지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뾰족한 대안이 없을 때 무의식으로 이판사판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1. 각축전(角逐戰)을 벌이다

‘서로 이기려고 다투어 덤비는 싸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실력이 비슷해서 막상막하인 경우 서로 이기기 위해 다툴 때 ‘각축전(角逐戰)을 벌인다’ 고 하는데, 이 말은 동물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에서 따온 말이다. 동물들은 자기의 영역을 다투거나 짝짓기 상대나 먹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싸움을 벌인다. ‘각(角)’은 동물의 뿔을 뜻하는데, 사슴이나 염소 같이 뿔이 있는 동물은 그 뿔을 맞대고 싸우므로, ‘각(角)’은 다툰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또 ‘각(角)’은 면과 면이 만나는 뾰족한 모서리를 뜻하기도 하는데, ‘각을 세운다’고 하면 모서리를 날카롭고 뾰족하게 만든다는 것으로, 날카롭게 대립한다는 뜻이 된다. ‘축(逐)’은 ‘쫓다. 쫓고 쫓기면서 다투다. 경쟁하다’ 는 뜻의 한자로 ‘우리를 뛰쳐나온 돼지를 잡기 위해 뒤쫓아 간다’는 의미의 글자이다. 그러므로 각축(角逐)은 글자 그대로 뿔을 맞대고 다투며 쫓아다니는 모습을 나타낸다. 그래서 ‘서로 이기려고 다투는 것’을 의미할 때 쓰인다.

2. 자웅(雌雄)을 가리다

암컷 자(雌), 숫컷 웅(雄)으로 구성된 ‘자웅’은 글자 그대로 수컷과 암컷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지만, 본디 자웅은 역(曆)에서 나온 말로서, 자(雌)는 밤은 나타내고 웅(雄)은 낮을 가리키는 말이다. 낮과 밤은 동시에 존재할 수 없고, 서로 번갈아 가면서 자기 세상을 만든다. 즉, ‘자웅(雌雄)’은 승부, 우열, 강약 따위를 나타내는 말로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상태를 나타내기도 한다. ‘자웅을 가리다’ 혹은 ‘자웅을 겨루다’ 는 막상막하의 비등한 힘을 가진 상대끼리 서로 승부를 겨루어 승자를 가릴 때 쓰는 말이다.

3. 샅샅이

‘샅샅이 뒤지다’

‘샅샅이’는 ‘샅’이라는 말이 두 번 반복됨으로써 그 뜻이 강조되어진 말이다. 그럼 샅은 어떤 뜻일까? ‘샅’은 두 다리 사이나 또는 두 물건 사이의 틈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이를 뜻하는   다리와 다리 사이를 가리키는 옛 글자로 ‘삿ㅎ’이 있는데, 이것이 ‘샅’으로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샅샅이는 물건 사이사이 틈을 뜻하는 글자인 샅이 반복되어 ‘틈이라는 틈 모두 다’ 또는 ‘조금이라도 틈이 있는 곳은 모조리’라는 뜻으로 쓰여서, ‘구석구석, 빈틈없이’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다리사이라는 의미의 ‘샅’의 흔적이 남아 있는 단어로 ‘샅바’가 있다. 샅바는 씨름할 때 허리와 다리에 둘러 묶어서 손잡이로 쓰는 천을 말한다. 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이나 또는 좁은 골짜기 사이를 ‘고샅’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골샅’에서 앞글자의 받침에 있는 ‘ㄹ’이 떨어져 나가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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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척지다

‘서로 원한을 품고 미워하다’ ‘등을 돌리고 원수지다’ 는 뜻으로 사용되는 ‘척지다’는 원래 소송과 관련된 말이다. 소송이 제기되면 재판을 열어 옳고 그름을 가리게 되는데, 소송을 거는 사람을 원고, 상대방을 피고라고 한다. 조선 시대에도 개인 사이의 다툼이 해결되지 않을 때는 소송을 제기하고 재판을 열었다. 당시의 재판관은 각 고을의 수령(사또, 원님)이었다. 이때 소송을 당하는 피고를 ‘척’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척지다’는 ‘소송을 걸어 다른 사람을 피고로 만들다’는 뜻이다. 원고와 피고는 서로 자신이 옳다고 다투게 되므로 사이가 좋을 리가 없고, 심하면 원수지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원수가 되거나, 사이가 나빠져서 등을 돌리게 되었을 때 ‘척지다’ 라고 하는 것이다.

2. 근사하다

요즘 ‘근사하다’는 말은 ‘그럴듯하다’ ‘괜찮다’ ‘좋다’ ‘멋지다’ 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 하지만 이 말은 원래 ‘근사(近似)’ 라고 하는 한자의 뜻 그대로 ‘거의 같다’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수학용어로도 ‘근사치(近似値)’ 라고 하면 ‘가까운 값’ ‘거의 같은 값’ 이라는 말이 쓰이고 있다.  ‘내가 예상했던 것과 비슷하게 맞아떨어졌다’ 라든지 ‘여러 사람의 작품이 근사해서 개성이 없다’는 식으로 쓰여지는 것이 원래의 단어 뜻이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뜻이 변하여 ‘그럴듯하다’ ‘멋있다’ ‘썩 좋다’ ‘괜찮다’ 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3. 숨바꼭질

요즘 아이들에게는 잊혀진 놀이일지는 모르지만, 어린 시절 온 동네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 중에 ‘숨바꼭질’이라는 것이 있다. 한 명이 술래가 되어 숨은 사람을 찾고, 술래에게 들킨 사람은 다음 술래가 되는 놀이이다. ‘숨바꼭질’이라는 말은 ‘물속으로 숨었다 나왔다 하는 것’을 뜻하는 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옛날에 쓰던 말 중에 ‘숨박곡질’과 ‘숨박굼질’이 있는데, 숨을 바꾸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숨을 바꾼다는 것은 물속에 들어갔다가 숨을 쉬러 나오는 것을 말하는데, 지금도 남쪽지방 사투리에는 ‘숨바꿈쟁이’라고 해서 잠수부를 뜻하는 말이다. 이 ‘숨박곡질’이란 말이 소리가 변해 ‘숨바꼭질’이 되었고, 뜻도 원래의 뜻에서 더 넓어져, 무엇이 보였다 숨었다 하는 일이나, 숨고 찾는 아이들 놀이를 뜻하게 된 것이다.

숨바꼭질과 같은 말로 ‘술래잡기’가 있다. 숨은 아이들을 찾는 역할을 술래라고 하는데, 이것은 ‘순라’에서 온 말이다. 조선 시대에는 밤이 되면 도성 안에 통행금지를 실시하고 도둑이나 화재를 막기 위해 포졸들이 도성 안을 살피며 돌았는데, 이 포졸을 ‘순라’ 또는 ‘순라꾼’이라고 했다. 이 순라가 ‘술라’로 소리 나다가 ‘술래’로 변한 것이다. 숨은 사람을 찾으러 다닌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1. 얼버무리다

‘얼버무리다’는 여러 가지를 한데 뒤섞는다는 뜻의 ‘버무리다’ 앞에 접두사 ‘얼-’이 붙은 것이다. ‘얼-’은 어떤 일을 분명하지 못하게 대충했을 때 앞에 붙이는 말인데, 어떤 말 앞에 ‘얼-’이 붙으면 ‘덜된’ 또는 ‘모자라는’ 뜻이 더해진다.

김치를 담글 때는 소금에 절인 배추에 갖은 양념을 넣고 쓱쓱 버무리고, 나물을 무칠 때에도 깨나 소금 같은 양념을 적당히 넣고 잘 버무려서 먹는다. 이때 제대로 버무리지 않고 대충 ‘얼버무리면’ 음식 맛이 제대로 안날 것이다. 이처럼 ‘얼버무리다’는 제대로 하지 않고 대충 버무린다는 뜻으로, ‘말이나 행동을 분명하지 않게 대충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도 저도 아닌 것을 ‘어중간하다’라 한다거나, 다부지지 못하고 어수룩한 사람을 ‘얼뜨기’ ‘얼간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대충하다, 어물어물 넘기다, 어물거리다, 어름어름하다’ 같은 말들도 비슷한 상황에서 쓰는 말들이다.

2. 옹고집

억지가 심하고 자기 생각만 우기는 고집 센 사람이나 그런 성질을 ‘옹고집’이라고 한다. 옹고집은 《옹고집전》이라는 소설의 주인공인데 고집이 세고 심술 사나운데다가 몹시 인색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불효막심하기까지. 어느 날 어떤 도사가 보다 못해 옹고집을 혼내 주려고 도술로 짚으로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 그 집으로 보냈다. 진짜 옹고집과 똑같이 생긴 가짜 옹고집 때문에 오히려 진짜 옹고집은 가짜로 몰려 쫓겨나게 되었다. 옹고집은 거지꼴로 다니며 갖은 고생을 하다가 끝내는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 그러자 도사가 나타나 그를 구해 주고, 가짜 옹고집을 물리칠 부적도 주었다. 옹고집은 이 일을 계기로 크게 뉘우치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옹고집(壅固執)은 이름에서부터 그 뜻을 읽을 수 있듯이 ‘옹(壅)’은 ‘꽉 막혔다’는 뜻이고, ‘고(固)’는 ‘단단하다’ ‘한결같다’는 뜻이다. ‘집(執)’은 ‘꽉 쥐다’ ‘잡다’ ‘지키다’ 라는 뜻이다. 그야말로 꽉 막힌 고집쟁이라는 것이다. 우둔하면서 고집이 센 사람을 일컫는 말로 ‘벽창호’도 있다. 벽창호는 ‘벽창우’가 변한 말인데, 뒤에 붙은 ‘우(牛)’는 ‘소’라는 뜻이고, 앞의 ‘벽창’은 평안북도 ‘벽동’과 ‘창성’에서 앞 글자만 딴 것이다. 벽동과 창성 지방의 소가 억세고 무뚝뚝해서 말을 잘 안 들었기 때문에 ‘고집불통’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마누라' 의 어원

‘마누라’는 요즘 일상에서 자신의 아내를 허물없이 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자기 아내를 약간 낮춰서 일컬을 때 주로 쓰인다. 농담 섞인 말로 ‘마주 누워 자는 여자’ 라거나 ‘마! 누라!(그냥 누워라)’라는 뜻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우스개소리일 뿐, 진정한 의미는 아니다.

원래 마누라는 고려 후기 몽골에서 들어온 말로, 조선시대에는 ‘대비 마노라’, ‘대전 마노라’ 처럼 마마와 같이 쓰이던 극 존칭어였다. 기록상으로 ‘마누라’는 15세기의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마노라‘로 처음 나온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여기서의 ‘마노라’는 ‘주인(主人)’의 의미이다. 《이두편람(吏讀便覽)》에서도 ‘마노라’에 대해 ‘노비가 그 주인을 일컫는 말’이라 하였다.  비천한 사람이 존귀한 사람을 부르는 말이라는 의미도 첨가되어 있다.

그런데 《한중록(閑中錄)》에서는 ‘마노라’가 ‘왕, 왕대비, 세자, 세자빈’ 등과 같은 궁중의 높은 인물을 직접 지시하는 데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비마노라, 선왕마노라, 웃전마노라’ 등으로 활용되어 궁중 인물과 결부된 존칭 호칭어로 쓰이고 있다. 이때에는 ‘존칭(尊稱)’으로서 ‘여성’은 물론이고 ‘남성’에게도 적용되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특이한 점이다.

궁궐 밖에서는 ‘마노라’가 ‘지체 높은 벼슬아치’나 ‘그 부인’ 등을 부르거나 지칭하는 데도 쓰였다. ‘운현(雲峴)마노라, 선혜당상(宣惠堂上)마노라’의 ‘마노라’가 바로 그것이다. 또한 무속(巫俗)이라는 특정 사회에서는 ‘마노라’가 ‘神’의 의미로도 통용되었다. ‘산신(山神)마노라, 성주마노라, 터주마노라’에 보이는 ‘마노라’가 바로 그 예이다. ‘산신, 성주, 터주’를 여성으로만 볼 수 없다는 점에서 보면 이때 쓰인 ‘마노라’는 ‘남성’에 적용된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마노라’는 존칭으로서 남녀 모두에게 통용되던 단어였음이 분명하다. 이는 ‘마마’ 또는 ‘마님’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러다가 19세기 이후 신분 제도가 무너지면서 ‘마노라’는 늙은 부인이나 자신의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 일반화되어 쓰이게 되었다. 어형도 ‘마누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존대(尊對)의 의미도 없어지고 ‘남성’을 포함하지도 않게 변화된 것이다. 조선조 말 ‘덕수궁’ 시절에는 궁중에서 ‘마누라’라는 말을 전혀 쓰지 않았다는 노(老) 상궁(尙宮)들의 증언을 토대로 할 때, 적어도 19세기 말 이전에 ‘마누라’의 의미 가치가 떨어져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해서 ‘마노라’는 존칭으로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적용되다가, 존대의 의미를 상실하고 ‘여성’에게 쓰이는 단어가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원래 '영감'이라는 단어도 '정삼품 이상 종이품 이하의 관원'을 말하는 것이었다. 오늘날도 판사나 검사를 '영감님'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옛날 그 관직의 등급과 유사하여서 부르는 것이다. 존칭이던 ‘영감’이 ‘마누라’의 상대어가 되어 ‘나이든 남자’를 일컫는 말이 된 것도 같은 무렵으로 추정된다.

 

 



1. 창피하다

체면을 구기거나 부끄러운 일을 당했을 때 ‘창피하다’는 말을 쓴다. ‘창피(猖披)’의 ‘창(猖)’은 ‘날뛰다’ ‘어지럽다’ 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전염병이 창궐하다’ 처럼 안 좋은 현상이 커지고 번질 때 쓰인다. ‘피(披)’는 ‘풀어헤친다’는 뜻이다. 풀어헤치면 속이 드러나고, 속에 감추어진 것을 남들에게 보이게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창피(猖披)’라는 말은 옷은 입었으나 제대로 갖추지 못해 헝클어진 모습을 뜻하는 말이고, 옷매무새를 제대로 하지 못했으니 너저분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게 되어 부끄럽다는 것이다. 간혹 ‘챙피하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겉모습 뿐 아니라 일을 제대로 못했다거나 양심에 거리끼는 게 있을 때나 떳떳하지 못할 때도 ‘부끄럽다’는 의미로 ‘창피하다’ 는 말을 쓰고, 수줍어서 부끄러울 때도 쓰인다.

2. 동장군

추운 겨울 ‘기상예보’에서 ‘동장군(冬將軍)이 기승을 부린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사람들을 벌벌 떨게 하는 추위를 용맹하고 무서운 장군의 모습에 의인화시킨 말이다. 이 말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러시아에 쳐들어갔던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됐다. 1812년 나폴레옹은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에 쳐들어갔다. 러시아 군대는 별 저항을 하지 않았고, 나폴레옹 군대는 쉽게 모스크바까지 갔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도시는 텅 비어 있고 러시아 황제는 항복은커녕 보이지도 않았다. 나폴레옹은 결국 전투다운 전투는 해보지도 않고 후퇴를 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추위와 굶주림 때문이었다. 그래서 전투에 진 것이 아니라 추위에 진 것이다. 사람들은 이 일로 러시아의 추위를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추위를 의인화해서 나폴레옹 군대마저 물리친 ‘동장군(冬將軍)’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3. 딴전을 피우다

할일이 있는데도 제쳐 두고 다른 일을 하거나, 엉뚱한 일을 할때 ‘딴전 피운다’고 한다. 여기서 딴전은 무엇일까? 옛날에 물건을 늘어놓고 파는 가게를 ‘전(廛)’이라고 했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할 때 ‘어물전’은 ‘어물을 파는 가게’ 이다. 면포를 파는 가게는 면포전, 종이를 파는 가게는 지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딴전’이란 다른 전(廛), 그러니까 다른 가게를 말한다. ‘딴전을 피우다’ 는 것은 자기네 가게가 있는데도 남의 장사를 봐주거나 다른 곳에 또 일을 벌이는 것이다. 정작 필요한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일을 하는 것이다. ‘딴청’을 피우다, 또는 ‘한눈 팔다’도 비슷한 경우에 쓰는 말이다. ‘한눈’이란 볼 데를 보지 않고 딴 데를 보는 눈이란 뜻으로, ‘한눈 판다는 것’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일에 관심을 갖는다는 말이다.

 

 


1. 봉 잡았다

‘봉 잡았다’의 봉(鳳)은 봉황의 봉(鳳)이다. 봉황(鳳凰)은 상상 속의 새인데, 상서로운 새인 만큼 매우 귀하고 훌륭한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얻거나 횡재를 했을 때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봉이 김선달의 이야기에서처럼 속이기 좋고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가리킬 때도 많이 쓰이고 있다. 그런데 ‘봉황(鳳凰)’의 ‘봉(鳳)’은 수컷을 의미하고, 뒤의 ‘황(凰)’은 암컷을 의미한다. ‘봉 잡았다’는 말은 ‘운수 좋다’는 뜻으로 쓰고, ‘황잡았다’는 ‘운수 나쁘다’는 뜻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이런 말 하나에서도 그 옛날 뿌리 깊은 ‘남아선호’ ‘남녀차별’을 엿볼 수 있다.

2. 아수라장

'阿修羅'는 산스크리트 'asur'의 음역(音譯)으로 쓴 한자이다. '아소라', '아소락', '아수륜' 등으로 표기하며, 약칭은 '수라(修羅)'라고 하는데 '추악하다'라는 뜻이다.

아수라는 본래 육도 팔부중(八部衆)의 하나로서 고대 인도신화에 나오는 선신(善神)이었는데 후에 하늘과 싸우면서 악신(惡神)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증오심이 가득하여 싸우기를 좋아하므로 전신(戰神)이라고도 한다. 그가 하늘과 싸울 때 하늘이 이기면 풍요와 평화가 오고, 아수라가 이기면 빈곤과 재앙이 온다고 한다. 인간이 선행을 행하면 하늘의 힘이 강해져 이기게 되고, 악행을 행하면 불의가 만연하여 아수라의 힘이 강해진다. 아수라는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흉칙하고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비슈누신의 원반에 맞아 피를 흘린 아수라들이 다시 공격을 당하여 시체가 산처럼 겹겹이 쌓여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를 아수라장이라 부르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므로 ‘눈뜨고는 볼 수 없는 끔찍하게 흐트러진 현장’ 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러 사람이 무질서하게 마구 떠들어대거나 덤비어 뒤죽박죽이 된 난장판'을 뜻하기도 한다.

3. 여보세요

우리나라에서는 전화를 걸 때, 제일 처음 상대방에게 하는 말이 ‘여보세요’ 이다. 왜 “여보세요?”라고 했을까? 우리나라에 처음 전화가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신기하여 어쩔 줄 몰랐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수화기를 귀에 대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렸으니까. 그래서 처음 전화기를 써 보게 된 사람들은 무슨 말을 먼저 할까 고민했을 것이다. 아무도 없는데 혼자 떠드는 것 같아 마땅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래서 머뭇거리면서 처음 사용한 말이 바로 ‘여기 좀 봐 주세요.’ 또는 ‘거기 누구 없소?’ 라는 뜻으로 ‘여보세요?’ 라고 하게 되었다. 옛날 사극을 보면 어느 집을 들어갈 때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라고 하는 장면을 보았을 것이다. 그와 같은 맥락으로 ‘여보시오’ ‘여보세요’ 라고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까 “여보세요?”하고 조심스럽게 불러 본 것이다. 그 뒤로 전화를 걸고 받을 때는 습관적으로 “여보세요?” 라는 말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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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님 덕에 나팔 분다

옛날에는 고을의 사또가 가마를 타고 행차 할 때 항상 나팔수가 먼저 앞장서서 나팔을 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나팔 소리로 '아, 원님이 행차하시는구나.'하고 알리는 것이다. 나팔수 옆에서는 "어이~, 원님 행차하신다. 길을 비켜라~." 하고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백성들은 길 옆으로 물러나 머리를 조아렸다. 백성들은 원님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지만, 나팔수는 맨 앞에 있다 보니 덩달아 백성들의 절을 받게 된다. 지위가 낮은 사람이 언제 백성들의 인사를 받아 보겠는가. 원님 행차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러니까 '원님 덕에 나팔 분다.'는 말은 다른 사람 덕분에 자기도 덩달아 이익을 볼 때 하는 말이다.

2. 난장판

난장(-場)은 5일장 또는 7일장처럼 정해진 장날 외에 특별히 며칠 간 임시로 개설한 장을 말한다. 특산물이 집산되는 시기에 주로 열렸다. 이 때가 되면 온갖 놀이패와 투전꾼, 건달이 모여들고, 각종 연희가 베풀어지며, 사기·도박·싸움이 일어나는 등 시끌벅적한 장이 열린다. 이 무질서한 상황을 ‘난장판’이라고 표현하는데, 원래는 시장과는 관계없는 과거시험장에서 유래된 말이다.

옛날에 관리가 되는 방법은 요즘의 국가고시처럼 과거시험을 치러야 했다. 과거시험은 원래 3년마다 한 번씩 치르는 게 원칙인데, 왕자가 태어나는 등 나라에 기쁜 일이 있으면 수시로 특별 시험도 실시했다. 과거시험을 보는 곳에는 전국에서 선비들이 몰려들어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하였다. 특히 나라가 어지러웠던 조선 후기에는 과거장이 질서가 없고 엉망이었다고 한다. 과거 시험장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온갖 부정행위가 난무하였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주먹패를 동원하는 일이 예사였고,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밤 새워 줄을 서 있다가, 시험장에 문이 열리면 수만 명이 한꺼번에 돌진하는 바람에 실제로 깔려 죽는 사람이 속출하기까지 하였다. 여러 사람이 어지럽게 뒤엉켜 떠들어대는 이런 과거장의 모습을 ‘난장판’ 이라 했다.  

시험 문제가 사전에 유출되는가 하면, 채점관과 짜고 답안지에 미리 표시를 해 두거나, 답안지 바꿔치기, 대신 써 주기, 합격자 바꿔치기 등 온갖 수단이 동원되었다. 이렇게 부정 합격한 사람 중에는 나중에 임금 앞에 나아갔을 때 자기 아버지 이름조차 쓰지 못하여 합격이 취소되는 사람도 있었다. 채점관들도 그 많은 답안지를 다 보기가 귀찮아 먼저 낸 답안지를, 그것도 처음 앞대목만 보고서 1차 채점을 마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의 과거 시험장은 한마디로 통제 불능의 난장판이었던 것이다

 

 

 


1. 수저

우리나라 사람들은 식사를 할 때 ‘수저’를 사용한다.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숟가락의 '숟'은 '쇠'를 뜻하고, '가락'은 '손'을 뜻한다. 그러니까 '숟가락'은 '쇠로 된 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쓰던 숟가락이 처음부터 모두 쇠로 된 것은 아니었다. 숟가락은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는데, 당시의 숟가락은 뼈로 만든 것도 있었다고 한다. 젓가락은 숟가락보다 늦게 발달하여 우리 조상들도 처음에는 숟가락만으로 식사를 했다. 그러다 삼국 시대에 와서 비로소 젓가락을 함께 사용하게 되어, 이때부터 '수저'라는 말이 생겨났다.

중국과 일본도 이쯤부터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쓰기 시작했는데, 음식의 특성상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점차 숟가락의 쓰임이 줄어들고 젓가락이 중심이 되었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요즘 중국과 일본 사람들은 주로 젓가락을 사용해서 식사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물요리가 많다보니 숟가락과 젓가락을 여전히 함께 사용하고 있다. 재료도 철이 많이 생산되는 우리나라는 자연히 쇠로 수저를 만들어 쓰게 되었고, 일본은 쇠 대신 나무로 수저를 만들어 쓰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2. 야단법석

‘야단법석(野壇法席)은 《불교대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야단(野壇)’이란 ‘야외에 세운 단’이란 뜻이고, ‘법석(法席)’은 ‘불법을 펴는 자리’라는 뜻이다. 즉, ‘야외에 자리를 마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라는 뜻이다. 사월초파일 같은 날에는 많은 신도들이 절을 찾아오기 때문에 법당이 좁아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으므로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하는 것이다. 그처럼 말씀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석가가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할 때 최대 규모의 사람이 모인 것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로 무려 3백만 명이나 모였다고 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질서가 없고 시끌벅적하고 어수선하게 된다.

이처럼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서로 다투고 떠들고 경황이 없고 시끌벅적한 상태를 가리켜 ‘야단법석’이라고 일반화되어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게 되었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야단법석을 떤다”라고 할 때의 야단법석은 ‘惹端법석’ 으로 한자 한글의 복합어이다. 한자 자체의 뜻이 ‘많은 사람이 모여들어 떠들썩하고 부산스럽게 굴다’는 의미의 야단(惹端)이다. 사전에 따라서는 이때도 법석을 法席이라는 한자로 쓰기도 한다.

 

 


1. 꿔다놓은 보릿자루

어떤 자리에서 있으나 마나 존재감이 없거나,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할 때, 혼자서 끼어들지 못하고 가만히 있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꿔다놓은 보릿자루’ 라고 한다.

연산군의 폭정이 극심해지자, 몇몇 신하들이 그 폭정에 항거하는 거사를 도모하게 되었다.  박원종의 집에 모여 각자의 역할을 정하고, 거사순서나 시간 등 세부사항을 확인하며 회의를 몇 차례 거듭하게 되었다. ​그들은 기밀이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누가 누군지 구별 못하게 불도 켜지 않고 어둠속에서 회의를 하곤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성희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상하게 여긴 그는 모인 사람의 숫자를 세어보았는데, 약속한 사람보다 한 사람이 많았다. 놀란 성희안은 그 사실을 박원종에게 보고했고, 박원종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조심스럽게 확인하다가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혹시나 첩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옆집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였던 것이다. 누군가가 그 위에 도포와 갓을 올려놓아 어둠 속에서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 후, 어떤 자리에서 있는 둥 없는 둥 말없이 듣고만 있는 사람을 '꿔다놓은 보릿자루'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2. 양아치

‘양아치’는 원래 거지를 뜻하는 말인데, 요즘은 품행이 바르지 못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이고 있다. 양아치는 집집을 전전하며 밥을 얻어먹는 ‘동냥아치’의 준말이다. ‘동냥’은 동령(動鈴)에서 유래된 말로, ‘방울을 흔든다’ 는 뜻이다. 스님들이 탁발을 나가면 염불과 함께 방울을 흔들어 자신의 존재를 집주인에게 알렸는데, 이 방울을 흔드는 ‘동령’이 구걸을 하는 행위와 같은 것으로 인식되면서, 동령이 동냥으로 변하여 자연스레 ‘동냥아치’라는 말이 생겼다.

3. 갈등(葛藤)

갈등(葛藤)은 서로 의견이 다르거나 이해관계가 얽혀 화합(和合)하지 못하고 충돌(衝突)함을 의미하는데, 칡갈(葛)자와 등나무 등(藤)자로 이루어져 있다. 칡과 등나무는 무언가를 감고 위나 옆으로  뻗어나가려는 성질을 갖고 있는 덩굴식물이다. 그런데 칡나무는 올라갈 때 위에서 보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며 자라고, 등나무는 올라갈 때 위에서 보면 시계방향으로 돌며 자란다. 즉, 서로 자라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나무와 등나무를 한자리에 심어놓으면 서로 계속 다른 방향으로 자라서 엉키고 꼬여 풀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두 식물이 서로 얽히고 설킨 모습에서 우리들이 흔히 쓰는 '갈등'이란 말이 만들어졌다.

 

 


엿 먹어라! 1편

먹을거리가 많지 않던 옛날에는 귀한 군것질거리였던 ‘엿’. 달콤하고 맛있는 간식 ‘엿’이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일상 언어생활에서 부정적인 경우나 비속어로 쓰이게 되었다. ​‘엿 먹어라’의 유래는 확실치 않고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膾炙)되게 된 사건이 있었다.

​1960년대는 초등학생이 중학교 진학을 위해 입학시험을 치르는 시대였다. 1965년 입학시험에서 지금의 과학에 해당하는 '자연'과목에서 엿을 만드는 재료에 대한 문제가 나왔다고 한다. 엿을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을 묻는 이 문제의 정답은 '디아스타아제'였다. 하지만 보기  중에 ‘무즙’도 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무즙에도 디아스타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 한문제로 당락(當落)이 결정된 불합격자에게는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무즙’을 정답으로 쓴 학생들의 부모가 이의를 제기하였으나, 문제를 출제한 서울시 출제위원회는 어떠한 경우든 정답은 하나라는 원칙을 고수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직접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보여주며 무즙에도 디아스타아제가 있으니 그것을 이용해서 엿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학부모들이 증명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난감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없었던 것으로 하고 모든 학생에게 1점의 가산점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디아스타아제’를 정답으로 쓴 학생의 학부모들이 항의를 시작했다. 틀린 학생도 점수를 주면 불공평하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출제위원회는 다시 원래 입장으로 돌아가서 ‘디아스타아제’만 답으로 하기로 결정했는데, 또 다시 혼란을 야기 시키고 말았다. ‘무즙’도 정답이라고 항의했던 학부모들이 다시 들고 일어났다. 학교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하며 서울시 교육위원회를 찾아가기도 했다.

지금도 대학입시에서 복수정답이 나오면 복잡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는 초등학생의 중등입시에서부터 극성스런 치맛바람이 일던 시절이니 정말 큰 사건이었다. 합격자 발표까지 다 된 상황에서 그 1점 때문에 원하는 중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38명 학생의 학부모들은 교육감 면담까지 했다. 항간에는 화가 난 학부모들이 무즙으로 만든 엿을 들고 가서 교육감에게 "엿 먹어라"며 던졌다는 소문으로 퍼지게 되었다. 학부모들은 무즙으로 엿을 만드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합격 처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서울시 교육위원회는 복수 정답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를 인정하게 되었고, 그 학생들을 "정원 외 합격"으로 지원하는 중학교에 보내주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엉뚱하게 고위 관료의 자녀들을 슬그머니 끼워 입학시키는 부정입학 사건이 벌어져서 또 한 번 난리를 겪기도 했다

 

 

.  엿 먹어라! 2편

​어쨋든, 이 ‘무즙파동’으로 인하여 ‘엿 먹어라’라는 부정적인 비속어로 널리 쓰이게 되기는 했지만, 1930년대의 신문에도 이미 ‘엿 먹어라!’라는 표현이 나와 있다고 하니 이 또한 정확한 유래는 아닌 듯하다.

보통 우리 생활 속에서 ‘엿 먹어라’는 ‘혼 좀 나봐라’ ‘고생 좀 해 봐라’ ‘닥치고 있어라(엿을 먹으면 입에 붙어 말하기가 어렵다)’ 등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외국 영화에서 손가락 욕설과 함께 ‘Fuck You(성교:性交)’라는 대사가 나올 때면 주로 ‘엿 먹어라’로 번역 자막이 나온다. 그래서 ‘Fuck You(성교)’ 와 ‘엿 먹어라’가 혼동되어 성적인 욕설로 둔갑하기도 했다. 엿 자체에는 전혀 욕설의 의미가 없는데, ‘엿 먹이다’는 상대를 골탕 먹이거나 악의적인 의도로 하는 말이 되어버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엿 먹어라’를 남사당패들이 성(性)적인 비속어로 사용했다는 주장이 있다. 남사당패는 과거에 전국을 돌면서 줄타기, 재주넘기, 가면극 등을 하던, 요즘으로 치면 연예인들이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서 떨어져 패거리 속에서 성장하면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천민들이었다. 그들만의 집단생활을 하는데다가 입담 또한 거칠어서 여러 가지 은어와 비속어들을 사용했다. 그들이 사용한 성적인 은어 중에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말로 ‘뽁’과 ‘엿’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엿 먹어라’는 ‘성교(性交)’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 우리의 고유 풍습에서 유래했다는 설(說)도 있다. 군역에 동원되었다가 고향에 가지 않고 그 지역에 주저앉아 살게 된 사람들이 초가집을 사면 엿을 돌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는 딱히 계약서라는 것이 없어서 그래서 초가집의 소유권 분쟁이 일어나면, 그 집을 샀다는 증거로 주변인들이 엿을 먹은 날짜를 기억하는 것으로 대신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설(說)들도 문헌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반론이 많지만,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근거는 될 수 있다.  

또한 ‘염(殮:시체를 관에 안장함) 먹어라’에서 변형된 것이라는 설(說)도 있다. 즉, ‘엿 먹어라’는 ‘죽어서 관에 들어가라’ 는 저주를 퍼붓는 욕설이라는 것이다.

유래가 어찌됐건 ‘엿’은 현재 우리 생활 속에서는 결코 좋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금은 보기 어려운 풍경이 되었지만, 입시철에 자식을 들여보내고 닫혀진 교문에다 정성들여 엿을 붙이고 간절히 합격을 기원하던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1. 꿔다놓은 보릿자루

어떤 자리에서 있으나 마나 존재감이 없거나,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할 때, 혼자서 끼어들지 못하고 가만히 있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을 ‘꿔다놓은 보릿자루’ 라고 한다.

연산군의 폭정이 극심해지자, 몇몇 신하들이 그 폭정에 항거하는 거사를 도모하게 되었다.  박원종의 집에 모여 각자의 역할을 정하고, 거사순서나 시간 등 세부사항을 확인하며 회의를 몇 차례 거듭하게 되었다. ​그들은 기밀이 새어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누가 누군지 구별 못하게 불도 켜지 않고 어둠속에서 회의를 하곤 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성희안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앉아있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상하게 여긴 그는 모인 사람의 숫자를 세어보았는데, 약속한 사람보다 한 사람이 많았다. 놀란 성희안은 그 사실을 박원종에게 보고했고, 박원종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조심스럽게 확인하다가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혹시나 첩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옆집에서 꿔다놓은 보릿자루였던 것이다. 누군가가 그 위에 도포와 갓을 올려놓아 어둠 속에서 사람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 후, 어떤 자리에서 있는 둥 없는 둥 말없이 듣고만 있는 사람을 '꿔다놓은 보릿자루'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2. 양아치

‘양아치’는 원래 거지를 뜻하는 말인데, 요즘은 품행이 바르지 못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이고 있다. 양아치는 집집을 전전하며 밥을 얻어먹는 ‘동냥아치’의 준말이다. ‘동냥’은 동령(動鈴)에서 유래된 말로, ‘방울을 흔든다’ 는 뜻이다. 스님들이 탁발을 나가면 염불과 함께 방울을 흔들어 자신의 존재를 집주인에게 알렸는데, 이 방울을 흔드는 ‘동령’이 구걸을 하는 행위와 같은 것으로 인식되면서, 동령이 동냥으로 변하여 자연스레 ‘동냥아치’라는 말이 생겼다.

3. 갈등(葛藤)

갈등(葛藤)은 서로 의견이 다르거나 이해관계가 얽혀 화합(和合)하지 못하고 충돌(衝突)함을 의미하는데, 칡갈(葛)자와 등나무 등(藤)자로 이루어져 있다. 칡과 등나무는 무언가를 감고 위나 옆으로  뻗어나가려는 성질을 갖고 있는 덩굴식물이다. 그런데 칡나무는 올라갈 때 위에서 보면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며 자라고, 등나무는 올라갈 때 위에서 보면 시계방향으로 돌며 자란다. 즉, 서로 자라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갈나무와 등나무를 한자리에 심어놓으면 서로 계속 다른 방향으로 자라서 엉키고 꼬여 풀 수 없게 된다. 이렇게 두 식물이 서로 얽히고 설킨 모습에서 우리들이 흔히 쓰는 '갈등'이란 말이 만들어졌다.

 

 


‘만승천자(萬乘天子)라도 식이위대(食以爲大)’라고 했다. 먹는 일이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우리 말 속에는 ‘밥’이 들어가는 말이나 밥을 지칭하는 단어가 많다. 먹는 사람, 먹는 때, 밥의 상태, 담는 모양, 형태 등등에 따라서도 다양하게 불리어 진다.

1. 임금이 먹는 밥 : 수라
2. 양반이나 웃어른이 먹는 밥 : 진지
3. 하인이나 종이 먹는 밥 : 입시
4. 귀신이 먹는 밥 : 메
5. 국이나 물이 없이 먹는 밥 : 강다짐
6. 반찬 없이 먹는 밥 : 매나니
7. 꽁보리밥 : 곱삶이(두 번 삶는다)
8. 반찬이 소금뿐인 밥 : 소금엣밥
9. 남이 먹다 남은 밥 : 대궁밥
10. 남의 눈치를 보아가며 먹는 밥 : 눈칫밥
11. 돈을 내지 않고 거저 얻어먹는 밥 : 공밥
12. 남의 집에 드나들면서 일을 해주고 얻어먹는 밥 : 드난살이밥
13. 김을 맬 때 먹는 밥 : 기승밥
14. 일하는 중간에 먹는 사잇밥 : 새참
15. 밤늦게 먹는 밥 : 밤참
16. 죄수에게 옥사의 구멍으로 넣어주는 밥 : 구메밥
17. 물이 많아 질척한 밥 : 진밥 ↔ 된밥
18. 덜 익은 밥 : 선밥 ↔ 탄밥
19. 타고 익고 설익은 밥 : 삼층밥
20. 아주 된 밥 : 고두밥
21. 술을 빚기 위해 시루에 쪄서 지은 고두밥 : 지에밥 또는 술밥
22. 찬밥에 물을 부어 다시 지은 밥 : 되지기
23. 그릇 위까지 수북이 담은 밥 : 감투밥
24. 밑에는 보리나 잡곡밥을 담고 그 위에 쌀밥을 수북이 담은 밥 : 고깔밥
25. 고깔밥과 비슷하게 잡곡밥을 먼저 담고 그 위에 쌀밥을 담거나, 밥그릇 안에 작은 접시나 그릇을 넣고 위에만 쌀밥을 얹은 밥 : 뚜껑밥

 

 

 

 

구미속초(狗尾續貂) - 담비 꼬리가 모자라 개 꼬리로 잇다, 좋은 것 뒤에 나쁜 것이 따르다.
[개 구(犭/5) 꼬리 미(尸/4) 이을 속(糸/15) 담비 초(豸/5)]
 
겉으로 내세운 그럴듯한 간판의 양과는 달리 실제로는 뒤떨어지는 개고기를 파는 것이 羊頭狗肉(양두구육)이다. 처음에는 용의 머리로 요란하게 시작했다가 뱀의 꼬리로 흐지부지하게 끝나는 것은 龍頭蛇尾(용두사미)다. 이처럼 처음과 끝이 한결같지 못하고 보잘 것 없는 결과가 따르는 것에 개의 꼬리(狗尾)가 담비 꼬리에 이어진다(續貂)는 이 성어도 있다. 담비는 족제비와 비슷하지만 부드럽고 광택이 나는 털은 고급 모피로, 길고 끝이 가는 꼬리는 고급 붓으로 사용되어 개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담비 꼬리에 개꼬리를 잇는다는 이 말이 겉보기와 실제가 다르다는 뜻 외에 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높은 벼슬자리에 앉히거나 불필요하게 관직을 늘리는 것도 비유한다. 담비 꼬리와 매미 날개라는 뜻의 貂蟬(초선)이란 말이 있듯이 높은 벼슬아치의 冠(관) 장식으로 썼다. 여기에는 중국 西晉(서진)의 왕족 8명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물고 뜯는 16년간의 내란인 八王(팔왕)의 난과 관계가 있다.
 
삼국시대 魏(위)나라의 군략가인 司馬懿(사마의)와 아들 司馬昭(사마소)가 기반을 닦아 손자 司馬炎(사마염)이 통일된 晉(진)을 세우고 초대 武帝(무제)가 된다. 무제는 일족들을 각지의 왕으로 봉하고 왕권을 강화하려 했으나 무능한 2대 惠帝(혜제)때 추한 용모의 악독한 賈皇后(가황후) 등 외척의 득세로 극도로 혼란해졌다. 무제의 동생 司馬倫(사마륜)이 외척을 축출하고 왕위에 오르자 다른 지역의 왕들이 힘을 합쳐 서로 몰아내는 16년간의 난리가 이어져 나라는 폐허가 되었다.
 
사마륜이 황제가 됐을 때 그를 도운 사람들은 벼락출세를 하게 되어 종들과 심부름꾼까지 초선관을 씌웠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말로 ‘담비 꼬리가 부족하게 되니 나중에는 개 꼬리로 대체하는구나(時人爲之諺曰 貂不足 狗尾續)’하고 비아냥거렸다. 唐(당)의 房玄齡(방현령) 등이 지은 ‘晉書(진서)‘ 趙王倫傳(조왕륜전)에 실린 내용이다.
 
고위공무원이 재직 중 특히 관련 있던 공기업이나 특수법인 등의 대표, 임원 등으로 임명되는 낙하산 인사는 이제 너무나 예삿일이 됐다. 야당으로 있을 때 그렇게 공격하던 이런 인사를 정권이 바뀌면 한 술 더 뜨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정권 창출에 공이 있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나눠주는 것을 이해할 만도 하지만 이전에 했던 독설에 사과라도 해야 ‘내로남불‘의 뻔뻔스러움이 덜하기라도 할 터이다. 명분만 그럴듯하고 개 꼬리가 이어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 제공 : 안병화(前언론인, 한국어문한자회) 

 

 


1. 아닌 밤중에 홍두깨

이 말은 별안간 불쑥 어떤 일을 당했다거나, 뜬금없이 누군가가 찾아왔을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홍두깨’는 요즘 별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므로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아마 다 아실 것이다. 과거 무명옷을 입던 시절, 빨래를 다듬이질 하는 방망이나 그 방망이 보다 훨씬 기다란 몽둥이에 빨래 감을 둘둘 감아 다듬이질 하던 그런 물건을 홍두깨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홍두깨는 이렇게 옷감을 감아 다듬이질하는 굵고 둥근 몽둥이를 가리키지만, 한편으로 홍두깨는 조선왕조 시대부터 남자의 성기로 풍자되어 왔다. 조선시대에는 유교가 사회적 규범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젊은 여인이 남편을 잃고 나면 평생 수절을 해야 했다. 그런데 동네 바람둥이나 한량들이 그냥 놔 둘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남자들이 야밤에 몰래 월담을 하거나 갖은 수법으로 은밀히 접근하여 정분을 맺는 일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한 번 내통을 하게 되면, 남자는 욕정을 참지 못하고 틈만 나면 찾아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시대에는 남편을 잃은 여인이 외간 남자와 정분이 나면 온전히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여인의 입장에서는, 은밀히 정분을 맺은 남자가 내심 그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가 찾아오는 것이 무척이나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예고도 없이 백주 대낮에 남정네가 찾아왔다면 얼마나 놀라고 난감할 것인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란 밤중이 아닌 백주 대낮에 예고도 없이 불쑥 남정네가 찾아왔을 때처럼 너무나 놀랍고 황당할 때 은유적으로 쓰인다. 덧붙여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라고 하면, ‘너무나 놀랍고 황당하기가 이를 때가 없다’는 것이다.  

2.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말을 할 때 쓰이는 말이다. ‘봉창’이란 한옥에 있는 작은 창문 중의 하나이다. 벽에 구멍을 뚫어 창틀 없이 종이만 발라 놓아 빛이 투과되어 들어오게 만든 것이다.
‘자다가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문인 줄 알고 열기 위해서 봉창을 두드리며 내는 소리’ 라는 의미로, 즉 ‘너무나 엉뚱한 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1. 일절(一切)과 일체(一切)

식당이나 술집 메뉴판에서 ‘안주 일절’ 혹은 ‘안주 일체’라는 표현을 간혹 볼 수 있다. ‘일절(一切)’ 과 ‘일체(一切)’는  같은 한자를 쓰고 있다. 온갖 안주를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는 뜻인데, 같은 한자를 쓰고 있지만 어떤 뜻으로 쓰이는지에 따라 읽는 것이 달라진다. 발음뿐만 아니라 쓰이는 상황에 따라 의미도 전혀 다른 낱말이 된다. 그래서 간혹 헷갈려서 잘못 쓰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

‘일체’는 ‘모든 것’ ‘전부’라는 의미를 가진 명사 또는 ‘모든 것을 다’라는 뜻의 부사로 쓰인다. “재산 일체를 기부했다”에서는 명사로, “지나간 일은 일체 털어 버리자”에서는 부사로 쓰였다. 그런데 ‘일절’은 ‘없다’ ‘않다’ 처럼 부정하거나 금지하는 말들과 같이 쓰이고 있다. ‘출입을 일절 금하다’ ‘일절 간섭하지 마시오’ 처럼 항상 뒤에 부정하는 말들이 온다. 이때의 의미는 ‘아주’ ‘전혀’ ‘절대로’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안주 일절’은 틀린 표현이고, ‘안주 일체’가 맞는 말이다.

2. 삿대질

삿대질은 보통 말다툼을 할 때 상대를 가리키며 손가락질을 하는 것을 말한다. '삿대'는 상앗대의 준말로, 배를 물가에서 멀어지게 하거나 물가로 댈 때, 또는 물이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배를 밀어 나갈 때에 쓰는 긴 장대를 말한다. 앞으로 나아가거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젖는 노(櫓)와는 다르다. 노처럼 넓지 않고 긴 대나무로 물속 바닥을 밀어 배를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삿대질은 원래 ‘상앗대로 배질을 하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다. 상앗대로 배를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바닥을 짚어야 방향을 바꾸거나 앞으로 나가게 할 수 있다. 말다툼을 할 때에 지금 다툼의 상대방을 정확히 지칭하기 위하여 상대방을 향하여 주먹이나 손가락 등으로 내지르는 것이다. 이것이 마치 상앗대로 배질을 하는 것과 같다 하여 생긴 말이라고 한다.

3. 쐐기를 박다

나무로 만든 구조물을 연결할 때 연결 부분을 고정시키기 위해 박아 넣는 것을 ‘쐐기’라고 한다. 일종의 나무 나사인데 나무틀이나 이음새에 쐐기를 박으면 서로 빠지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일을 결정할 때 뒤에 딴 말이 나오지 않도록 분명히 하는 것을 ‘쐐기를 박는다’고 한다. 또한, 쐐기는 물건의 틈새에 박아 넣어 사이를 벌리거나 바위를 쪼갤 때 작은 틈에 박아 넣는 용도로도 쓰인다. 그래서 쐐기를 박는다고 하면 서로 관련되어 있는 사물의 관계를 끊어 놓거나 순조롭지 못하게 한다는 뜻으로, 남의 일이나 이야기에 끼어들어 중단시키는 경우에 쓰인다. 이렇게 상반된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지만 뒤탈이 없도록 미리 단단히 다짐을 둘 때 더 많이 쓰인다.

 

 

 

 


1. 주책스럽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책맞다’ 또는 ‘주책스럽다’ 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실수가 거듭되면 ‘주책바가지’라고 부른다. 흔히들 술에 취해 실수할 때가 많으므로 주책을 주책(酒責), 즉 ‘술의 책임’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주책은 주착(主着)에서 나온 말이다. 자신의 주관이나 뚜렷한 주장이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주책맞다' 또는 '주책스럽다'는 바른 표현이 아니고, '주책없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주책없이 그저 남을 따라하거나, 남 하자는 대로 하게 되면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실속 없이 손해를 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주책이 있어야 한다.

2. 이 정도는 약과

이 말은 ‘쉽다’ ‘별거 아니다’ 라는 의미로 주로 쓰이고 있다. 여기에서 ‘약과’는 제사상에 올리거나 간식으로 먹는 전통 과자를 말한다. 약과는 부드럽고 딱딱하지 않아서 먹기 쉽기 때문에 ‘그까짓 거 별거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때 쓰인다. 또 다른 유래도 있다. 약과는 조선시대에 귀한 음식이었고, 뇌물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부정부패가 심해지면서 뇌물의 품목이 더욱 비싸고 귀한 걸로 바뀌면서 금은보화나 산삼, 녹용 등의 진귀한 물건들이 많아지면서 ‘약과’는 인기품목에서 멀어지게 되었다.그래서 하인들조차 “에이! 이건 약과네~~” 하면서 별거 아닌 것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정도는 약과지’는 ‘별거 아니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3. 호주머니(胡주머니)

우리의 전통 옷 한복(韓服)에는 주머니가 없다. 주머니가 달린 옷은 장돌뱅이나 장사치들이 주로 입었다. 그래서 양반들이 입던 전통 옷에는 손을 넣는 데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떤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단지 손을 감추기 위한 공간으로 쓰이므로 무엇을 담을 수 있게 막혀있지 않고 트여있었다. 그래서 물건을 담을 수 있도록 따로 독립된 ‘주머니’를 달고 다녔다. 오늘날의 작은 손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염낭’ 혹은 ‘귀주머니’ 등이 있었다. 그런데 만주에 살고 있던 오랑캐 호족(胡族)들의 옷에는 주머니가 많이 달려 있었다. 그들은 전투를 좋아하는 호전(好戰)적인 종족으로서, 전쟁이나 수렵을 하려면 많은 소도구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호족들의 옷에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호족들의 주머니’라는 뜻으로 ‘호(胡)주머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개화기에 외국인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양복이 들어오고, 우리도 주머니가 있는 옷을 널리 입게 되었다.

 

 

 



1. 주책스럽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가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책맞다’ 또는 ‘주책스럽다’ 고 한다. 그리고 이런 실수가 거듭되면 ‘주책바가지’라고 부른다. 흔히들 술에 취해 실수할 때가 많으므로 주책을 주책(酒責), 즉 ‘술의 책임’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주책은 주착(主着)에서 나온 말이다. 자신의 주관이나 뚜렷한 주장이 있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주책맞다' 또는 '주책스럽다'는 바른 표현이 아니고, '주책없다'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주책없이 그저 남을 따라하거나, 남 하자는 대로 하게 되면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실속 없이 손해를 보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주책이 있어야 한다.

2. 이 정도는 약과

이 말은 ‘쉽다’ ‘별거 아니다’ 라는 의미로 주로 쓰이고 있다. 여기에서 ‘약과’는 제사상에 올리거나 간식으로 먹는 전통 과자를 말한다. 약과는 부드럽고 딱딱하지 않아서 먹기 쉽기 때문에 ‘그까짓 거 별거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때 쓰인다. 또 다른 유래도 있다. 약과는 조선시대에 귀한 음식이었고, 뇌물로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부정부패가 심해지면서 뇌물의 품목이 더욱 비싸고 귀한 걸로 바뀌면서 금은보화나 산삼, 녹용 등의 진귀한 물건들이 많아지면서 ‘약과’는 인기품목에서 멀어지게 되었다.그래서 하인들조차 “에이! 이건 약과네~~” 하면서 별거 아닌 것으로 취급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정도는 약과지’는 ‘별거 아니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3. 호주머니(胡주머니)

우리의 전통 옷 한복(韓服)에는 주머니가 없다. 주머니가 달린 옷은 장돌뱅이나 장사치들이 주로 입었다. 그래서 양반들이 입던 전통 옷에는 손을 넣는 데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떤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단지 손을 감추기 위한 공간으로 쓰이므로 무엇을 담을 수 있게 막혀있지 않고 트여있었다. 그래서 물건을 담을 수 있도록 따로 독립된 ‘주머니’를 달고 다녔다. 오늘날의 작은 손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염낭’ 혹은 ‘귀주머니’ 등이 있었다. 그런데 만주에 살고 있던 오랑캐 호족(胡族)들의 옷에는 주머니가 많이 달려 있었다. 그들은 전투를 좋아하는 호전(好戰)적인 종족으로서, 전쟁이나 수렵을 하려면 많은 소도구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호족들의 옷에 주머니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호족들의 주머니’라는 뜻으로 ‘호(胡)주머니’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개화기에 외국인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양복이 들어오고, 우리도 주머니가 있는 옷을 널리 입게 되었다.

 

 

 

 


1. 용 되다

‘용’은 상상 속의 동물이다. 몸은 거대한 뱀처럼 생겼지만 온몸에 비늘이 있고 발도 있다. 머리에 난 뿔은 사슴뿔 같고, 귀는 소처럼 생겼다. 용은 깊은 못이나 호수, 바다 속에 살면서 때때로 하늘에 올라가 바람과 구름을 일으키므로 용은 발로 여의주를 꽉 잡고 있는 형상으로 구름과 함께 그려 진 그림이 많다. 중국의 황허 강 상류에 용문이라는 협곡이 있는데, 이곳에는 물살이 센 폭포가 있다. 잉어가 이 용문의 거센 물살을 거슬러 뛰어오르면 용이 된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데, 워낙 험해서 웬만해서는 성공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려움을 견디고 성공하여 크게 출세하는 것을 용이 되는 것에 비유하게 된다.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크게 출세하여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을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한다. 용이 되었다는 뜻이 된다. 이 말은 주로 과거에 급제한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옛날에는 과거 급제가 큰 출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꾸라지 용 됐다’는 말은 변변하지 못하던 사람이 아주 훌륭하게 성장하여 놀라움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인다.

2. 군불과 군것질

‘쓸데없는’의 뜻을 가지고 있는 접두사 ‘군’은 여러 단어에 붙여 쓰이고 있다. ‘군말’은 쓸데없는 말, ‘군살’은 불필요한 살, ‘군침’은 흘려봐야 소용없는 침, ‘군식구’는 없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식구를 뜻한다. ‘군것질’은 쓸데없는 먹을 것 또는 본래 먹을 것 말고 덧붙여 먹는 것을 뜻한다. ‘군것질’의 ‘질’은 부정적인 행동을 나타내기도 하고 약간 비하의 의도가 담겨있다. 즉, ‘군것질’은 먹지 말라는 것,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는 행위가 된다. 하지만, ‘군불’에서의 쓰임은 좀 다르다. 새벽녘 온돌의 온기가 식을 무렵 잠을 이기며 깨서 다시 장작을 넣어 따뜻하게 지피는 불이니 ‘쓸데없다’ 기 보다는 처음에 지폈던 불에 ‘더하다​’ ‘보태다’ 의 의미가 더 크다.  

3. 개떡같다

먹을 것이 지금처럼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에 해먹던 음식 중에 ‘개떡’이라는 게 있다. 개떡은 밀가루를 곱게 채치고 남은 찌꺼기나 메밀 속껍질로 만들었다. 밀가루나 메밀가루도 아니고, 그것을 고르고 난 거친 가루로 만든 것이니 모양이인들 정성 들여 예쁘게 만들 리 없다. 가루로 반죽을 만든 다음 그 반죽을 편평하고 둥글넓적하게 대충 만들어서 쪘는데, 생김새만 못생긴 것이 아니라 맛도 별로 없었다. 배가 고파서 어쩔 수 없이 먹는 것이다. 그래서 못생기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개떡 같다’고 하는 것이다. 이 음식을 왜 개떡이라고 불렀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추측이 있다. 하나는 겨로 만든 떡이라서 ‘겨떡’이라고 하다가 차츰 소리가 변해서 ‘개떡’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변변치 못하다는 뜻을 가진 접두사 ‘개-’가 붙었다는 설(說)도 있다.



1. 심금을 울리다

석가모니 주변에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제자들이 많이 모여 들었는데, ‘스로오나’도 그 중 하나였다. 스로오나는 몸과 마음을 다해 누구보다 열심히 수행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깨달음의 길이 보이지 않자 조바심이 나고 지치기 시작했다. 그런 스로오나에게 석가모니가 다가와 거문고를 비유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거문고의 줄이 지나치게 팽팽하거나 느슨하면 고운 소리를 낼 수 없는 것처럼, 수행 역시 너무 강하거나 약하지 않도록 알맞게 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부처님은 마음을 거문고에 비유해 제자에게 깨달음의 길을 일러 준 것이다. 무언가에 자극을 받아 마음이 움직일 때 ‘심금(心琴)을 울린다’고 하는데 ‘심금’이란 마음의 거문고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마음의 거문고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심금을 울린다는 것과 같은 뜻으로 ‘감동(感動)’이라는 말도 있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감격(感激)’은 크게 감동했을 때 쓰는 말이다.

2. 짬밥​

‘짬밥’은 군대에서 유래된 말로 보인다. 어원을 ‘잔반(殘飯)’으로 보는데, ‘잔반’은 먹고 남은 밥이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에게 남은 밥을 먹였을 리는 없고, 아마도 과거 부실한 군대밥을 비꼬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잔반’은 빨리 발음하면 ‘잠반’이 되는데, 첫소리를 되게 발음하는 경향 때문에  ‘짬반’이 되고, ‘반’은 한글 ‘밥’으로 바뀐 것이다. ‘짬밥’이 된소리 ‘짬빱’으로 변형되고, ‘짬’이 다시 분리돼 ‘짬통, 짬당번’ 등으로까지 용법이 확대되게 되었다. ​군대에서 만들어진 ‘짬밥’은 군대 밖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짬밥을 많이 먹었다는 것은 그만큼 군대생활을 오래 했다는 것이고, 그에 비례해 계급이 높고 경험이 많다는 것이다. 사회에서도 ‘짬밥’ 혹은 ‘짬밥 수’는 경험과 경력,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지위를 뜻한다. 이때의 ‘짬밥’은 이제 원래의 의미인 ‘남은 음식(잔반)’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3. 선술집

‘선술집’은 ‘선술’과 ‘집’이 결합된 형이다. ‘선’은 동사 ‘서다(立)’의 관형사형이고, ‘술’은 ‘酒’이므로 ‘선술’은 ‘서서 먹는 술’로 해석된다. ‘서서 먹는 술(선술)’을 파는 집이 바로 ‘선술집’이다. ‘선술집’에서는 백 잔을 마셔도 꼭 서서 마시고 앉지 못하는 불문율이 있었다고 한다. 앉아서 마시기라도 하면 다른 패의 술꾼들이 버르장머리 없다고 시비를 걸어 큰 싸움으로 번지기도 했다고 한다. 세월 따라 ‘선술집’ 형태는 달라졌지만, 서서 먹는 방식만은 그대로 이어져, 1960년대까지만 해도 곳곳에 술청 앞이나 드럼통을 사이에 두고 삼삼오오 서서 술을 마시는 싸구려 ‘선술집’이 많았다고 한다. 요즘은 꼭 서서 먹지 않더라도 저렴하고 서민적인 술집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선술집’이라는 말은 옛 문헌에는 등장하지 않고, 민태원 소설 ‘부평초’(1920년)에서 처음 발견된다. 그래서 이 말의 생성 시기를 1910년으로 잡기도 하나 그닥 미더운 근거는 없다. 사전으로는 ‘조선어사전’(1938년)에 처음 올라 있다.

 
.  우리말 나들이

1. 안달복달

별것도 아닌 일에 공연히 속을 태우며 조급하게 굴고, 스스로를 조급하게 몰아치는 것을 ‘안달복달’ 이라고 한다. ‘안달’은 동사 ‘안달다’의 어간이 그대로 명사로 굳어진 것이다. ‘안달다’는 명사 ‘안’과 동사 ‘달다’가 결합된 구성인데, ‘안’은 ‘內’의 뜻으로 ‘안달다’에서는 ‘속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달다’는 ‘안타깝거나 조마조마하여 마음이 몹시 조급해지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단단한 물체가 열로 몹시 뜨거워지다’의 ‘달다’에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안달다’는 ‘속마음이 타서 몹시 조급해지다’가 된다. 우리는 현재 ‘안달다’ 대신 ‘안달’에 접미사 ‘-하다’가 결합된 ‘안달하다’를 많이 쓰고 있다. ‘안달’을 강조해서 말할 때 ‘복달’을 결합해 ‘안달복달’이라 한다. 여기서 ‘복달’은 본래 ‘눈치코치’에서 ‘-코치’와 같이 단순히 운(韻)을 맞추기 위한 첩어 요소인데, 굳이 첩어 요소로 ‘복달’을 취한 것은 안달을 심하게 하여 조급하게 볶아친다는 의미를 가지기 위함이다. 그래서 ‘안달복달’은 ‘안달’을 단순히 강조하는 의미를 넘어 ‘안달하며 볶아치는 일’로 재해석된다.  

2. 미봉책(彌縫策)과 고육책(苦肉策)

말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으면 바로잡아 고쳐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슬쩍 넘어가서는 발전이 없다. 또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서 다시는 그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제가 있는데도 대충 덮어놓고 지나가고, 그때그때 때워 넘기면 나중에는 겉잡을 수없이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 이렇게 임시변통 식의 문제 해결 방식을 미봉책(彌縫策)이라 한다. 미봉(彌縫)이란 옷감의 터진 부분을 깁고 꿰매는 것을 말한다.

미봉(彌縫)이란 말은 원래 나쁜 뜻이 아니다. 춘추 시대 정(鄭)나라 장공(莊公)이 주(周)나라 환왕(桓王)과 싸울 때 둥근 진을 벌여 놓고 전차를 앞세우고 보병을 뒤따르게 하였다. 그런데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일부 병력을 보내 그 사이를 채우게 하였다. 이것을 두고 미봉책(彌縫策), 즉 터진 부분을 메우는 계책이라고 하였다. 이 미봉책을 써서 수적 열세를 딛고 환왕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미봉책이라는 말은 본질적인 문제를 덮어둔 채 그때그때 눈가림 식의 해결로 대충대충 넘어가는 태도를 나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크다. 미봉책으로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수는 있지만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육책(苦肉策)이라는 말도 있다. 고(苦)는 쓰다 또는 괴롭다는 뜻이고, 육(肉)은 고기 또는 살을 말한다. 말 그대로 '육체를 괴롭게 하는 계책'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오나라 주유(周瑜) 진영이 조조(曹操)의 백만 대군과 싸울 때였다. 주유 진영의 황개(黃蓋)라는 장수가 조조에게 가혹한 고문을 받은 뒤 일부러 거짓으로 항복하여 신임을 얻었다. 황개는 조조에게 배를 묶게 하는 계략을 써서 마침내 오나라가 화공(火攻)으로 전쟁에 이기도록 하였다. 이렇듯 어떤 큰일을 이루기 위해 괴로움이나 손해를 감수하면서 쓰는 계책을 고육책(苦肉策)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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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달복달.


별것도 아닌 일에 공연히 속을 태우며 조급하게 굴고, 스스로를 조급하게 몰아치는 것을 ‘안달복달’ 이라고 한다. ‘안달’은 동사 ‘안달다’의 어간이 그대로 명사로 굳어진 것이다. ‘안달다’는 명사 ‘안’과 동사 ‘달다’가 결합된 구성인데, ‘안’은 ‘內’의 뜻으로 ‘안달다’에서는 ‘속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달다’는 ‘안타깝거나 조마조마하여 마음이 몹시 조급해지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단단한 물체가 열로 몹시 뜨거워지다’의 ‘달다’에서 온 것이다. 그러므로 ‘안달다’는 ‘속마음이 타서 몹시 조급해지다’가 된다. 우리는 현재 ‘안달다’ 대신 ‘안달’에 접미사 ‘-하다’가 결합된 ‘안달하다’를 많이 쓰고 있다. ‘안달’을 강조해서 말할 때 ‘복달’을 결합해 ‘안달복달’이라 한다. 여기서 ‘복달’은 본래 ‘눈치코치’에서 ‘-코치’와 같이 단순히 운(韻)을 맞추기 위한 첩어 요소인데, 굳이 첩어 요소로 ‘복달’을 취한 것은 안달을 심하게 하여 조급하게 볶아친다는 의미를 가지기 위함이다. 그래서 ‘안달복달’은 ‘안달’을 단순히 강조하는 의미를 넘어 ‘안달하며 볶아치는 일’로 재해석된다.  

2. 미봉책(彌縫策)과 고육책(苦肉策)

말이나 행동에 문제가 있으면 바로잡아 고쳐야 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슬쩍 넘어가서는 발전이 없다. 또한,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해서 다시는 그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문제가 있는데도 대충 덮어놓고 지나가고, 그때그때 때워 넘기면 나중에는 겉잡을 수없이 문제가 커질 수도 있다. 이렇게 임시변통 식의 문제 해결 방식을 미봉책(彌縫策)이라 한다. 미봉(彌縫)이란 옷감의 터진 부분을 깁고 꿰매는 것을 말한다.

미봉(彌縫)이란 말은 원래 나쁜 뜻이 아니다. 춘추 시대 정(鄭)나라 장공(莊公)이 주(周)나라 환왕(桓王)과 싸울 때 둥근 진을 벌여 놓고 전차를 앞세우고 보병을 뒤따르게 하였다. 그런데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 일부 병력을 보내 그 사이를 채우게 하였다. 이것을 두고 미봉책(彌縫策), 즉 터진 부분을 메우는 계책이라고 하였다. 이 미봉책을 써서 수적 열세를 딛고 환왕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미봉책이라는 말은 본질적인 문제를 덮어둔 채 그때그때 눈가림 식의 해결로 대충대충 넘어가는 태도를 나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크다. 미봉책으로는 당장의 위기를 모면할 수는 있지만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육책(苦肉策)이라는 말도 있다. 고(苦)는 쓰다 또는 괴롭다는 뜻이고, 육(肉)은 고기 또는 살을 말한다. 말 그대로 '육체를 괴롭게 하는 계책'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오나라 주유(周瑜) 진영이 조조(曹操)의 백만 대군과 싸울 때였다. 주유 진영의 황개(黃蓋)라는 장수가 조조에게 가혹한 고문을 받은 뒤 일부러 거짓으로 항복하여 신임을 얻었다. 황개는 조조에게 배를 묶게 하는 계략을 써서 마침내 오나라가 화공(火攻)으로 전쟁에 이기도록 하였다. 이렇듯 어떤 큰일을 이루기 위해 괴로움이나 손해를 감수하면서 쓰는 계책을 고육책(苦肉策)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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