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室에서1515
승권이와 백지당 본문
선명회 합창단- Home on the range(America)
저의 동인천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제가 속했던 2학년1반에는 백지당 이라고 불리우는
기말시험성적의 꼴찌자리를 다투던(?) 10여명의 학생들이 있었읍니다
기말시험에서 꼴찌를 하게되면 백지당 당수로 추대(?)를 해주었는데
인천에 비하여 학습능력이 한참 뒤처져있던 김포의 중학교에서 인천으로 유학을 온 탓에
자연스럽게 당수후보물망에 올라있던 종혁이(근황을 모름),
약국집 아들로 부족한것없이 기타연주에만 신경을 쓰던 수관이 (서울의 한 대형교회 담임목사),
아침조회시간부터 종례시간까지 공책에 바둑판을 그려놓고 O와 X를 흑백돌 삼아 바둑을 두던 부길이와 혜겸이
(서부길은 70~80년대 오랜기간동안 대한민국 아마바둑의 최고수로 군림했고 혜겸이는 현재 기원 운영중),
1달이면 20여일을 학교앞 만화가게나 분식집으로 등교를 대신하던 상철이 (10여년전에 사망),
맨앞줄에 앉아 있다가 시험지가 맨뒤의 학생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문제를 다 풀었다며 퇴장하던 승권이
(승권이는 저의 가장 가까운 벗으로 지금도 정기적으로 부부동반 여행을 함께 다니는 형제같은 친구사이 입니다)
그리고 공차기를 좋아하던 저와 재승이(한국유리 이사)등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백지당의 당원 이었읍니다
저를 비롯한 이들의 성적표를 보면 각과목별로 <수>나 <우>는 어림도 없었
그나마 <미>는 커녕 성적표가 온통 <양>이나 <가> 일색 이었읍니다
저희들이 고등학교 2학년 2학기에 올라설 즈음에 인일여고~이화여대 출신의 미모를 겸비한 김수경 선생님께서
음악담당 교사로 저희교실에 나타나셨읍니다
김수경 선생님 께서는 저의 이종사촌누나(박문여고 졸업)와 이화여대 기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대학동기 사이 였읍니다
김수경 선생님 께서는 3분기 기말시험에서 음악을 필기가 아닌 실기시험으로 치른다고 하셨고
번호순으로 4명씩 조를 이루어 중창을 시키셨는데 그때 시험곡이 <언덕위의 집> 이었읍니다
그 음악실기시험에서 저와 같은조를 이루었던 친구들은 <수>를 받았고
중학교 1학년때부터 4년반동안의 성적표에 처음으로 <수>를 받은 저는 백지당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해야 했읍니다
1970년 제가 1학년때 전교생 조회모습 멀리 수봉산이 보입니다
고2(1971년)때 숭의동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인천시내 고교교련실기대회때
연대장 병철이(저와 조중고등학교 12년동창, 현재 중국에서 목회중)와 함께 기수로 참가
1973년 2월 졸업식을 마친후 물망초 클럽(인천시내 남녀고교생들이 함께 활동했던 독서클럽)의 동인천고 3인방
정남이, 일후, 현호
물망초 클럽에는 원래 승권이가 다니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 에서인지 승권이가 물망초클럽을 나오면서
저를 대신 새회원으로 추천을 해 주었읍니다
지난 29일 승권이의 부인께서 김치를 담구기위하여 저희 하수오농장에서 키운 초롱무를 제아내와 함께 손질을 하고 있읍니다
지난봄 영주,울진의 백암온천,동해안,삼척,정선 여행을 갔다온후로
오랫만에 넷이 오붓하게 모여 앉았읍니다
밤 깊는줄 모르고 밤새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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