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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족 이야기

장모님

매루 2011. 11. 13. 22:18

 

 


 

 

 

오늘은 저의 처 작은 아버님의 칠순잔치가 있었읍니다

지금은 공룡화석지로 유명한 경남고성(옛 충무 옆)의  동해면 이라는 작은 어촌의 함안이씨 종가집에 1959년 맏며느리로 시집오셨던 저희 장모님께서는

제 처가 초등학교 5학년적에  장인어른께서 배사고로 돌아 가시자 시댁의 살림을 떠맡아야 하셨읍니다

제처를 비롯한 4남매를 키우랴 당시 끼가 다분했던 시동생(오늘 칠순잔치의 주인공)의 뒤치닥거리 이야기를 하자면

장모님께서는 석달열흘을 이야기해도 모자랄거라고 이따금 지나온 세월들에 대하여 긴 한숨을 내쉬곤 하십니다

 

 

 

 처가댁 APT에서 바라다 보이는 덕소역

 

 

 

 경춘고속도로의 한강구간

 

 

 

 예전의 신앙촌 예배당 밑으로 중안선 터널이 있고 사진 오른쪽이 옛신앙촌 집단거주지역 자리입니다

 

 

 

 술 좋아하는 저의 바로 아랫동서인 박서방의 훤한 이마에는 <어제과음>이라는 글씨가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 있읍니다

 

 

 처남댁,큰처제,장모님,일후 처

 

 처조카,처남댁,처남

 

 저희 장인어르신이 배사고로 돌아가시던해에 막내처제는 장모님 뱃속에 있었던 유복자 입니다

  대학시절 科커플 출신인 이들은 두 딸 모두를 영재교육과정에 진입시킨 신세데 부부입니다 

 

 

 

 처남, 큰동서,막내동서

 

 경남 고성의 바닷가에 살고 게시는 처고모(왼쪽)님 께서는 저를 당신의 사위들보다 더 좋아 하십니다

김스방(경상도 사투리는 ㅡ 와 ㅓ 를 바꿔 발음을 합니다)왔나?

마이 무그래이! (많이 먹어라)

 

 

 

당신의 친사위들에게는 성 뒤에 서방 이라는 호칭을 붙여 부르시지만

저에게는 김서방 이라는 호칭 대신에 "일후야" 라며 이름을 부르실만큼 각별히 생각해주시는  저희 처 작은 아버지 께서는

저와 제처가 처녀총각때 교제를 하고있을때 든든한 후견인 이시자 저의 장인 어르신 이십니다

 

 

 

 

 

 

 

 여흥시간이 되었는데 장모님의 표정이 웬지 어색 합니다

 

 덩달아 처 고모님까지 어색해 보이고요

 

 장모님께서 자리로 돌아오셔서 탁자밑에 몸을 숙이시고는 뭔가를 열심히 만지신후 다시 무대에  나가셔서 춤을 추시기 시작하자

처고모님께서도 외투를 벗어 던지시고 본격적인 흥이 돋기 시작 합니다

 아싸 ,,,,,,,

 

장모님께서 앉으셨던 탁자 밑에는 신발굽이 떼어져 있었읍니다

한복치마 덕분에 보이질 않았지만 장머님의 한쪽 신발의 굽이 덜렁더렁 했었고 이것이 행사내내 불편 하셨던 장모님 께서는

여흥이 시작되자 멀쩡한 다른쪽의 신발굽을 아예 떼어버리는 균형을 택하신후 무대로 진출을 하셨었읍니다 

 

최병걸의 <진정난 몰랐었네>는 저와 제처가 신혼여행을 마치고 처가댁에 인사를 갔었을때 벌였었던 

동네잔치때 장모님께서 부르셨던 노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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